손 안의 휴대폰을 자꾸 만지작 거리게 된다.
열차가 출발하는 시간이 아직 14분가량 남았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서 플랫폼까지 내려왔다.
역에 들어오기 전 근처 커피숍에서 산 커피는 이미 얼음이 많이 녹은 물로 밍밍하기 짝이 없다.
목요일 오후 14시 51분 열차.
내가 탈 것도 아닌데 손 안의 휴대폰으로 승강장에 걸려있는 아날로그시계로 시간을 계속 확인한다.
떠나보내야 하는 감정의 아쉬움도 이제는 익숙해져, 특별할 것 없이 무미한 오후다.
하고 싶은 말이야 전화통화로 문자로 언제든지 할 수 있는데, 잘 다녀오라는 한 마디를 위해서 감정을 시간으로 붙들어 매는 행동을 반복한다.
플랫폼 벤치에 앉아 녹빛 가득한 철로 위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휴대폰을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이미 해야 할 말들은 다했고, 그녀 역시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서울에서의 일정을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은 보내는 사람의 수고로움을 모를 것이다.
함께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수고로움.
상대를 충분히 아끼고 신경 쓰고 있음을 계속해서 알려줘야 하는 수고로움.
헤어짐의 시간은 늘 아쉽고 슬프다는 감정표현의 수고로움.
그러한 수고로움이 있어야 하기에 즐겨보던 유튜브조차 그녀가 떠나는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다.
“내 말 듣고 있어? “
“응, 지윤 씨랑 7시에 저녁 먹기로 했다고? 듣고 있지.”
세이프다. 하지만, 들리기는 했지만 듣고 있지는 않았다.
귓바퀴에서 맴돌고 있던 말을 얼른 입으로 옮겨 담아서 대답을 했다.
그녀가 조금 더 예민했다면 하나하나 캐물었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늘 내가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캐묻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관용이 좋다.
‘딩딩 딩딩딩’
특유의 열차 들어오는 소리에 몸이 반응하듯 자연스레 일어선다.
“아직 아니야.”
그녀가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말했다.
반대편 열차다. 부산행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였다.
그러고는 다시 시계를 본다. 아직 5분가량 남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 플랫폼에 내려왔을 때 보다 사람들이 꽤 늘었다. 대부분 여행이나, 업무차 열차를 이용하겠지만 그런 모습들을 보니 한참 서울까지 면접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 떠오른다. 대학생 때부터 입어서 이미 색이 바랜 짙은 남색의 정장과 회색빛 비즈니스 서류가방.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차곡차곡 머리와 가슴을 무겁게 하던 KTX 열차 가격. 그 배고픈 시절들의 내 모습들이 오버랩되는 듯했다. 넓은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구로동으로 종로로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하지는 않았는데.
그 시절의 나는 꿈으로 배고팠고, 지금의 나는 그 꿈을 다 소화해 버린 사람처럼 밍밍하다.
‘딩딩 딩딩딩’
대략 417km의 거리를 달려갈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평균 속도 200km ~ 300km로 달려 2시간 30분가량이면 서울에 도착하겠지. 열차가 들어오자 플랫폼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짐들을 다시 둘러매며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분주함을 보며 나는 느긋해진다. 플랫폼에 걸려있는 시계를 흘끗 보니 출발하기 2분 전이다. 들고 있던 크로스백을 그녀의 어깨에 메어주고 가볍게 포옹하고 인사한다.
“잘 다녀와.”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플랫폼 위 공기가 잠시 멈춘 듯 고요했다.
열차 문이 닫히고,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긴 음이 울렸다.
그녀가 타고 있는 열차가 천천히 멀어지자,
나는 이제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 가득, 밍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