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아주 개인적인 감상

by 우물

짧은 영상들로만 접해서 츠네오가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만 인상에 남아있었던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나는 슬픈 영화를 보면 감정에 매몰되고 에너지를 너무 많이 뺏기는 탓에 슬픈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본 영화 역시 슬플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지금껏 보지 않았다. 츠네오가 오열하는 그 장면이 잘린 영상만으로도 감정의 깊이가 느껴지기에 슬픔에 매몰될 것 같아 피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한 소녀와 취업을 앞둔 젊은 대학생의 만남.
두 주인공의 사랑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
너무나도 뻔하게 슬플 것 같은 설정 아닌가.
하지만, 나의 생각과 영화는 완전 다르게 흘러갔다.
영화는 장애도 가난도 그리고 그들의 사랑도 담담하고 담백하게 풀어갔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은 유모차에 태워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시간에만 나이 든 할머니와 산책이라는 사치를 누릴 수 있다. 거의 누더기 차림의 할머니와 유모차에 태워진 다 큰 소녀.
할머니는 조제가 사람들 눈에 띄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는 조제가 조금이라도 바깥세상에 관심을 보이려 하면 불구자는 자신의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여기서 할머니가 일본어로는 ‘壊れ物’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는 ‘망가진 것, 파손품’에 가까운 말이다. 나는 그 말이 너무 깊이 있게 다가왔다.
과거 일본의 역사 속 장애인들은 사실상 외부에 눈에 띄면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마을에서 쓸모가 없으면 쉽게 죽임을 당했던 문화들이 근대 이전까지 종종 있어왔고, 그래서 국가의 복지제도에 대한 불신 그리고 철저한 외부와의 단절을 통한 폐쇄적인 태도로 행동하는 할머니의 태도가 더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조제는 그렇게 철저하게 할머니의 과보호 속에서 할머니가 주워온 책으로만 세상과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 <1년 후에> 속의 인물의 이름으로 소녀는 조제가 된다. 사강의 본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사랑에 대한 허무한 인식과 건조함 그리고 불안한 현실을 그리는 사강 특유의 작품관을 예측한다면 주인공들의 사랑이 어떻게 진행될지 감독이 사강의 작품을 통해서 복선으로 던진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호랑이를 물고기를 등장시키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제목에 대한 답을 던져준다.

영화 속에서 할머니는 조제에게 바깥에 호랑이가 있다고 말하며, 바깥은 위험한 곳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츠네오와 여행을 하며 호랑이를 보러 가서, 호랑이의 포효 소리(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움츠리지만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 갇힌 호랑이는 조제 자신과도 동일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의 보호 속에서 격리된 자신의 에너지와 자아를 투영한 것일지도.

물고기들을 만나기 위해서 수족관을 찾아가지만 휴관일이라 물고기는 보지 못하고, 물고기들에게 헤엄쳐오라고 외치는 장면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수조라는 공간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수조의 바깥으로는 나오지 못하는 물고기가 상징하는 것 역시 조제 본인이 아니었을까.
이 부분에서는 특히 인어공주의 모티브가 많이 보이는 듯했다. 츠네오를 통해서 두 다리를 가지고 바깥세상을 나오게 되지만 결국 다른 여성에게 떠나는 왕자의 모습이 인어공주와 조제 사이에 많이 겹치는 듯했다.


그들의 사랑은 순애보적이고 아름다워야 했지만, 영화 곳곳에는 그 사랑의 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장치물들을 보는 재미들이 있었다.
나의 삶의 경험으로 영화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츠네오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사랑. 호기심에서 시작된 감정은 동정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보편적으로 그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 받아들이게 되고 분명 성공하는 사례도 있지만 실패하는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시되고 또한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의지하게 되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난 나의 경험과 삶을 바탕으로 인식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츠네오의 사랑은 그렇게 무너지지 않기를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조제는 그렇게 츠네오가 무겁지 않을 수 있도록 이별을 선물하고, 많은 감정의 무게들이 쏟아지듯 주저앉아 오열하는 장면은 너무나도 애달프게 만든다.

결국, 도망친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결과.
헤어짐이란 그 형태와 과정이 어떻든 결과는 사랑으로부터의 도망침일지도.
영화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래도 우리에게 츠네오의 선택과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말하는 듯하였다.
나는 그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조제는 그를 통해 세상을 나오게 되었고, 희망의 전동휠체어를 타고 사회로 내딛게 되었으니.

많은 생각과 감정이 드는 영화였다.
보는 내내 아기자기한 일본 특유의 감성과 장치들이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였다.
장면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 아무렇게나 쓰이는 사람이 없었던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젊은 날의 사랑. 그 형태가 어떠하든 결과가 어떠하든 사랑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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