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침대에 대한 단상

by 우물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만의 침대’를 가졌다. 유학생활 기숙사의 침대도 나만의 침대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침대라는 가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나도, 누나도 모두 바닥에 두터운 요를 펴고 잠을 잤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방식이었다.
한국의 주거문화에서 바닥은 오랜 세월 동안 가족의 일상, 취침, 노동, 심지어는 의례까지 수용했던 다기능적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침대라는 수면 공간은 분명 근대적 생활양식의 일부였고, 주거의 공간의 변화에 따라 침대라는 가구의 필요성도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나에게 침대는 어릴 적 어느 잘 사는 친구의 집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설고도 부러운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 집에서 본 침대는 마치 사유화된 공간의 절정처럼 느껴졌다.
스프링 위를 걸을 때마다 탄력이 발끝을 밀어 올렸고, 그 감각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경쾌함을 주었다. 그리고는 침대 위를 놀이기구 마냥 방방 뛰어다녔다. 동네에서 동전 몇 개를 주어야 탈 수 있었던 ‘퐁퐁(혹은 방방이)’을 집 안으로 들여온 듯한 감각.
물론 그 들뜬 유희는 친구 어머니의 단호한 일갈과 함께 언제나 빠르게 종료되곤 했다.
그러면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침대 하나 없는 나의 방은 어찌나 그리도 썰렁하게 느껴졌는지. 머리가 크며 가난을 인식하고 차마 엄마에게 침대를 사달라고 말은 하지 못했지만, 침대는 나에게 어린 시절 경험했던 계급의 상징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침대는 계급의 상징으로 보인다.
근대 이전 유럽에서 침대는 부와 권력, 그리고 가족의 명예를 물질적으로 체현하는 장치였다.
커다란 목재 구조물과 부드러운 깃털 매트리스, 커튼과 캐노피가 달린 이탈리아식 침대는 귀족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침대는 그 자체로 왕권의 무대, 상류층 신체의 안락함을 보증해 주는 일종의 정치적 가구였다.
반면 서민들에게 침대는 종종 단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 장소였다.
조악한 나무로 만든 삐걱대는 오래된 침대에서 태어나고, 살고, 죽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침대는 가족의 역사와 공동체의 시간성을 담아내는 장치였다. 버리지도 못하고 버릴 수도 없는 침대는 서민들의 삶에 그나마 쉼을 허락한 가구였으리라.

이처럼 침대 위의 공간은 삶의 무대였고, 침대 아래의 공간은 삶이 도달하지 못하는 미지의 틈이었다. 어둠이 깃든 그 공간은 민속적 상상 속에서 악령·괴물·알 수 없는 존재들이 사는 장소로 해석되었다.
오늘날에도 침대 아래의 어둠은 다양한 콘텐츠의 소재로 사용되며, 인간의 아래에 도사리는 곳, 손이 닿지 않는 틈새는 언제나 불안과 상상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침대는 그러한 이중적 상징—삶과 죽음, 안락과 공포, 현실과 상상을 분리하는 경계—를 품고 있었다.


그러한 공간으로서의 침대와는 달리 내가 이른 나이에 경험한 침대는 놀이기구였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욕망의 기능으로 인식되었다.
내가 침대의 기능이 단지 ‘잠을 자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은 일본에서 유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였다. 유학생활을 위해 일본으로 넘어가서 처음으로 했던 일이 신주쿠의 러브호텔에서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그곳에는 물침대, 진동 기능이 있는 침대, 각종 전자장치로 무장한 침대들이 존재했다. 침대 위에 남겨진 자취들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습관·취향·관계의 방식이 응축된 문화적 기호처럼 보였다. 혼자의 잠은 생리적 행위에 머물렀지만,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침대는 곧 사랑과 욕망, 관계의 긴장과 조율이 이루어지는 복합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러브호텔이었기에 대부분 그런 욕망의 공간으로서 작용했으리라.

침대는 결국 인간의 몸이 머무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사회적 의미가 투사되는 무대이다. 침대 위에서 인간은 휴식을 취하고, 병을 앓고, 사랑을 나누고, 때로는 죽음에 이른다. 그것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축적물을 담아내는 공간 장치다.

결국 침대를 둘러싼 역사는 신체와 공간의 관계에 대한 인류학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인간은 왜 특정한 방식으로 누우려 하는가? 우리가 취침을 위해 선택한 공간은 어떻게 우리의 시간, 관계, 위계, 욕망을 드러내는가? 침대는 이러한 질문들에 침묵으로 답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위에서 축적되어 온 문화적 흔적들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오늘 내가 가진 침대는 더 이상 부의 상징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신체, 나만의 내밀한 시간이 쌓이는 장소라는 점에서 그것은 가장 사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물건이다.
침대라는 작은 사물 속에 인간의 삶 전체가 깊게 스며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 나는 매일 밤 그 위에 눕는 행위를 단순한 휴식 이상의 경험으로 느끼게 된다.
침대는 결국 인간이 “누움”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철학적 장소이며, 쉼과 존재의 의미가 만나는 조용한 무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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