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선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노트에 글을 적을 때도 HB보다 B를 주로 사용했다. 그러다 틀려서 지우개로 지우기라도 하면, 어린 나의 어설픈 손끝은 하얀 공책의 여백을 거무튀튀한 흔적들로 얼룩지게 만들곤 했다. 그마저도 지우개가 다 지워내지 못한 흑연가루들이 남아, 햇볕이라도 비추면 종이의 표면은 희미하게 얼룩졌다.
어쩐지 그 얼룩이 좋았다.
지워지지 않은 흔적,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 선의 잔향 같아서.
미술 시간에 사용한다던 누나의 필통 속 4B 연필을 꺼내면, 손끝은 더 짙은 흑연으로 물들었다.
그 손으로 공책을 잡으면 표지에 시커먼 손자국이 남았고, 그 자국이 보기 싫어 지우개로 벅벅 문지르다 공책을 찢어먹은 적도 있었다.
지우려다 더 망가지는 건, 그때도 지금도 다르지 않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굵고 진한 선이 좋았다.
샤프펜슬을 쓰게 되었지만, 여전히 빨간 마크의 B가 찍힌 샤프심을 고집했다. 1000원짜리 얇은 샤프에 억지로 쑤셔 넣으면, 심은 부러지거나 속에서 갈려버리기 일쑤였다.
검은 머리의 모나미볼펜을 쓰면 잉크가 번지고, 문장 끝에 잉크 똥이 맺혔기에 볼펜은 사용하기를 꺼려했다.
선이 굵은 살고싶다.
연필처럼 번지고 얼룩지더라도 흔적이 남는 삶이 좋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세상은 얇은 선으로 살아가길 요구했다. 서류의 여백, 계약서의 줄 간격, 메신저의 말끝.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정확해야 했다.
굵은 선으로 덤비면 ‘거칠다’는 평을 듣고,
진하게 흔적을 남기면 ‘지나치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점점 얇은 심을 쓰기 시작했다.
흑연 대신 잉크로, 잉크 대신 키보드 자판으로,
삶의 선은 점점 더 가늘고 단정해졌다.
가끔 문득, 예전처럼 손끝이 시커메지는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굵은 선으로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삐뚤빼뚤하지만 진심이 있는 선들, 지워도 자국이 남는 선들이다.
굵은 선으로 살고 싶다는 건, 결국 나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남기고 싶은 무의식이겠지.
남에게 보기 좋게 다듬은 얇은 선보다, 삐져나오고 번져버린 흑연의 얼룩이 더 진실한 나의 얼굴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굵은 선으로 살고 싶다.
진하게 흔적을 남기되, 그것이 흉이 되어도 괜찮은 사람.
지우개로 문질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그런 선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