혓바늘이 났다.
혓바늘은 수시로 나를 괴롭힌다.
혀 끝이나 입안 어딘가에 작은 통증이 자리 잡으면, 말 한마디 삼키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진다.
다른 곳에 난 상처보다 훨씬 작지만 피곤하다.
하얗게 피어오른 작은 염증은 식사의 즐거움을 앗아가기에 더욱 그러하다.
별것 아닌 증상이긴 하지만, 그 불편함은 다른 곳에 생기는 상처보다 날 피곤하게 만든다.
어릴 적부터 나는 입안에 염증이 잦은 편이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무릎이 까질 때면 후시딘이나 마데카솔을 아무렇지 않게 발랐으면서도, 입안에 연고를 바른다는 건 도무지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오라메디를 손에 묻혀 내 입안에 조심스레 발라 주던 장면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광고에서 익숙하게 들리던 “오라~ 오라메디”라는 말과 달리, 실제로 느껴지던 감각은 낯설고 불편했다.
연고를 바르고 나면 입안은 텁텁해지고 끈적해졌다.
침이 고이면 삼켜도 되는 건지, 이걸 삼켜도 정말 괜찮은 건지, 어머니가 하는 방식이 맞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말문은 늘 막혔다. 그저 입을 다문 채 그 이상한 감각을 견디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마치 늘 그래왔다는 듯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돌아서셨다.
왜 혓바늘이 생기는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피곤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면역력이 떨어져서 생긴다고 들 말한다. 그러고 보면 내 삶은 자주 그런 구간으로 접어들어 있었다. 지쳐 있고, 마음이 닳아 있고,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순간들. 혓바늘은 그런 상태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신호 같기도 하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예민함이 어머니를 닮은 건 아닐까.
어머니는 입안에 구내염이 잘 나지 않았을까.
혹시 나는 어머니 인생에 자주 돋아났던 혓바늘 같은 아들은 아니었을까. 말없이 아프고, 신경 쓰이지만 쉽게 드러내지 않는 존재로.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불편해도 늘 한결같았다.
그런 어머니가 혓바늘로 힘들어하던 날들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말수가 줄고, 밥을 천천히 드시던 모습. 그때의 나는 그 작은 통증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이제 와서야 안다. 사소한 아픔 하나에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얹힌다는 것을.
요즘 혓바늘이 날 때면, 연고보다 먼저 어머니가 떠오른다.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길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지만, 입안에 남는 텁텁한 감각처럼 그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픔 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 삶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혓바늘을 달고 살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입안에 연고를 발라주시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