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렇게 되었다.

by 우물

사람은 본능적으로 세상의 모든 일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의미를 찾는 행위는 그 대상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부모로부터 일종의 ‘사명’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기대 섞인 의미 속에서 자유롭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비정상적인 환경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가정은 아이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도록 자존감을 북돋우며 키운다.
특히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심리학의 열풍은 ‘자존감’이 개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강조해 왔고, 그 결과 현대인은 개인의 존엄성과 특별함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게 되었다.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보자.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아이라는 존재는 귀족 가문에서나 대를 이을 귀중한 존재로 대접받았을 뿐, 대다수의 개인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인식조차 갖지 못한 채 생을 보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다르다.
내가 태어난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타인의 삶에도 숨겨진 목적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와 함께 모든 사건에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가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일상의 풍경조차 바꾼다.
1월 1일의 태양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떠오르지만, 사람들은 그 찰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고양된 감정을 느낀다.
태양 그 자체의 에너지와는 무관하게, 그것을 해석하는 개인의 시선에 따라 태양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되기도 한다.

에드워드 호퍼, 아침 해

하지만 정말 모든 것에 의미와 이유가 존재하는 걸까.

우연을 운명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의 해석이다.
'세렌디피티'라는 근사한 말도 그렇다.
내가 미리 끼워 놓은 징표를 우연히 들고 있는 이성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 찰나의 우연을 운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많은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인지, 아니면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천명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운명으로 선택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저 그렇게 되었다.

때로는 어떤 일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더 큰 위로를 준다.
모든 일에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하고, 모든 고난에 배움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때로 우리의 삶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저 그냥 그렇게 이루어진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억지로 부여하던 의미의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다.

세상은 때로 아무런 의도 없이 흘러가고, 우연은 그저 우연으로 남을 때 가장 담백하다.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되는 자유, 해석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 “그저 그렇게 되었다"는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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