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빛의 심장

TURNER: Light & Shade 전시관람 후기

by 우물
<윌리엄 터너, 전함 테메레르>


수년 전, 온라인에서 길을 헤매다 우연히 마주친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는 그 시절 나의 영혼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1838년, 한때 트라팔가 해전의 영웅이었던 함선이 작은 증기 예인선에 끌려 해체지로 향하던 그 쓸쓸한 뒷모습. 서정적이고 따스한 황금빛 노을 아래 흐르던 그 풍경은, 30대 중반이라는 생의 변곡점에 서 있던 나의 고독과 고통스럽게 닮아 있었다.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정착한 사회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었지만,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나는 그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자각이 나를 짓눌렀다.
아직은 쓸만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밀려 로더히스의 종착지로 향하는 고철 전함의 운명에서 나의 방향 상실을 보았다.
터너의 붓끝에서 피어난 빛은 그렇게 나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가슴 깊은 곳에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시간이 흘러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다시 마주한 터너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조금 달랐다. 캔버스 위의 거대한 유화가 아닌, 갈색 잉크로 새겨진 작은 풍경 판화들이 나를 맞이했다.
처음엔 낯설었다.
대기를 감싸는 그 찬란한 빛의 소용돌이를 기대했던 나에게 어두운 톤의 판화는 다소 건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작품 하나하나에 시선을 고정하자, 이내 경이로움이 차올랐다.
'판화를 어떻게 이토록 표현해 낼 수 있는가.'

<윌리엄 터너, 판화, 고요>

갈색 잉크의 농담 사이로 배어 나오는 섬세한 빛의 묘사는, 터너가 평생을 바쳐 탐구했던 '대기의 숨결'을 증명하고 있었다. 특히 작품 후반부의 <고요(Calm)> 앞에 섰을 때, 나는 숨을 멈췄다. 바다 위 배들은 줄지어 서 있고, 파도의 일렁임조차 느껴지지 않는 절대적인 정적. 그 좁은 판화의 틀 안에서 터너는 찰나의 순간을 영원으로 박제해두고 있었다.

터너의 작품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화라는 거대한 격동을 목격한 자의 일기이며,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숭고미(Sublime)'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다. 작은 판화 속에서도 그 숭고함은 빛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갈색의 깊이만큼 더 단단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짧은 관람을 마치고 전시장 문을 나서며, 나는 터너가 목격했던 19세기의 산업 혁명을 오늘날 내가 목격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의 시대로 읽어본다.
시대의 변화가 인간의 인식을 앞질러 달려가는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해체지'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터너의 회화가 가르쳐주듯, 예술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박동하는 시간'을 선물한다. 그것은 축제처럼 요란한 디오니소스적 열광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고요한 아폴론의 심장과 같은 평온이다.

터너는 붓과 정으로 찰나를 붙잡으려 했다.
그리고 그는 믿었을 것이다.
언젠가 그 순간을 마주할 누군가가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숭고함'의 가치를 읽어내리라는 것을.
지금 나는 방향을 잃은 소모품이 아닌, 변화의 시대를 목격하고 기록하는 한 사람의 관찰자로서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터너가 남긴 갈색의 고요를 기억하고, 휘몰아치는 시대 속에 스스로 평안을 얻고자 나는 그렇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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