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후기] 만약에 우리

청춘의 시간

by 우물

청춘을 바라보는 일은 늘 아련한 잔상 뒤로 쓸쓸함을 동반한다.
어린 시절 동경했던 청춘도, 그 한복판을 치열하게 관통하던 시절도, 그리고 중년의 길목에서 되돌아보는 지금의 청춘도, 결국은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의 연속일 뿐이다.

미숙하기에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 날카롭기에 아프다.

사랑은 감정의 소치라고들 하지만, 결국 마침표를 찍는 것은 '시간'이다.
누군가는 은호와 정원의 이별을 실패라 부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본다. 그들의 사랑은 결코 무너진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그 찰나에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을.

그들의 말처럼 만약에 그들의 만남이 지속되었다고 해도 그들의 사랑은 유지되었을까.

영화 밖의 현실은 스크린보다 훨씬 냉혹하다.
은호와 정원이 각자의 길에서 행복을 찾는 결말은 어쩌면 관객을 향한 동정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은호들은 대개 취업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무릎이 꺾이고, 가난이라는 족쇄에 묶여 꿈의 파편을 주워 먹으며 살아간다. 현실의 정원들 역시 청춘을 통째로 삼키고도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가난이라는 이름의 아귀에게 평생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갈 확률이 높다.


한 줌 햇볕마저 허락받지 못하는 삶이 나의 청춘이었기에 더욱 아팠다.

일본식 도미토리의 좁디좁은 이층 침대 하나가 내 세계의 전부였던 시절. 낮에는 학교로, 밤 11시부터는 신주쿠에 자리한 러브호텔의 청소를 했었다.
손님이 남기고 간 무질서한 사랑의 흔적을 10분 내에 지워내야 했던 2인 1조의 노동.
타인의 뜨거웠던 흔적을 치우며 나는 지독한 고독을 씹었다.
화려한 신주쿠의 밤거리는 관광객들에게나 있는 것이지, 나는 그 화려함을 받쳐주는 네온사인 뒤로 비추는 그림자 중 하나였을 뿐이다.

새벽 6시, 노동을 마치고 나오면 몽롱한 새벽 공기가 나를 감쌌다.
여름비가 쏟아지던 어느 월급날, 편의점 앞에 서서 마시던 삿포로 맥주의 차가운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옆자리에서 피곤에 절어 맥주를 들이키던 이름 모를 회사원.
우리는 서로의 고단함을 굳이 묻지 않은 채 짧은 눈인사로 동지애를 나눴다.
동이 터 오는 신주쿠의 회색빛 기운과 시원한 빗줄기 속에서, 그 쓸쓸함은 어느덧 애틋한 생의 의지로 치환되어 있었다.

그리고 1년 후 여자친구와 함께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도쿄 네리마에서 신축 원룸에 들어갔을 때 나의 청춘은 은호가 꿈꾸었던 청춘과 닮아있었다.

"대학만 졸업하면 여기서 자리 잡을 거야. 우린 분명 잘 될 거야."

우리가 나누었던 그 당찬 맹세들은 영화 속 은호와 정원의 대사와 서글프도록 닮아 있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라는 생의 바퀴 속에서 꿈이 조금씩 마멸되어 가던 그 시간들조차 그들과 판박이였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아픈 사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 감당해야 했던 날 선 통증들에 공감했기 때문이리라.

은호와 정원의 사랑은 실패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시간, 아낌없이 자신을 태워 서로를 비췄던 그 시간들로 그들의 사랑은 이미 충분하다. 그저 지하철 앞에서 마침표를 찍은 것뿐이지 실패한 사랑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나의 청춘 역시 그렇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빗줄기 속 편의점 앞과 네리마의 작은 원룸 안에서 나의 청춘은 여전히 소멸하지 않은 채 형형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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