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

by 우물


온몸이 아프다.

봄이 오는 것 같은 소리에 이끌려 운문산을 오르려 했지만, 발밑의 현실은 질척이는 소음이었다.
눈이 녹아내린 운문산의 산길은 부드러운 흙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입을 벌린 검은 진창이었다.
눈이 녹으며 만들어낸 진창은 날카로운 중력으로 나를 미끌어내렸고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닳아빠진 농구화는 진창 밑 산의 등을 움켜쥐기에는 너무 낡고 매끄러웠고, 뾰족하게 울퉁불퉁한 거친 바위가 마치 누가 던진 것 마냥 등의 통증으로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나는 미끄러져 뻗어 누운 채 그대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이미 바닥이 닳아빠진 농구화를 신고 운문산을 오르려 했던 나의 오만함에 실소가 터진 것이다.
그것은 산을 얕본 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조롱이자, 봄이 온 줄 알고 아무런 채비 없이 삶의 다음 계절로 건너가려 했던 나의 빈곤한 태도에 대한 자백이었다.

손바닥에 박힌 검은 진흙은 마치 오래된 습성처럼 끈적거렸다.
등산로 옆 마른 낙엽을 한 움큼 쥐어 문질러 보았으나, 비벼댈수록 진흙은 손톱과 손바닥 표피 사이사이로 더 깊숙이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새로운 마음과 기분을 찾기 위해 산에 올랐으나, 내가 입고 있는 옷과 내가 신은 신발, 그리고 내가 가져온 기억들은 여전히 낡은 것에 머물러 있었다.
지워내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그 진흙 자국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완전히 세탁되지 않는 생의 얼룩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하산하는 길, 등 뒤를 스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넘어진 자'라는 낙인을 고스란히 엉덩이와 손, 무릎과 등판에 각인하고 다녀야 했다.

하산 후 뜨거운 물이 가득 찬 사우나에 몸을 담갔을 때, 비로소 육체의 이물질들은 씻겨 내려갔다.
하지만 물속에서 서서히 떠오른 것은 시퍼렇게 멍든 무릎과 다리였다. 겉으로 드러난 진흙은 비누 몇 번에 사라졌을지언정, 살갗 아래 고인 피의 흔적은 여전히 그날의 넘어짐을 증명하고 있었다.

새로운 길을 가겠노라 다짐하면서도 정작 발바닥의 낡은 습관은 버리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진창 같은 과거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운문산의 진창은 나에게 봄의 생동감이 아니라, 아직 청산하지 못한 겨울의 잔재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온몸이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그럼에도 나는 또 한 번 산을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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