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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18. 2018

프랑스를 걷다 - 파리 편 1

 

 19세기 파리의 비밀스런 사원, 비비안 아케이드


                                                        


 위대한 사상가 발터 벤야민이 19세기 파리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이자 비밀스런 상품의 사원으로 묘사한 아케이드(Passage Couvert. 정확히 번역하자면 지붕이 덮인 통로). "이곳에서 사람들은 번쩍거림에 도취되어 꿈을 꾸듯 자신의 시대를 살아갔다."
닫혀진 이 색다른 세계는 센느 강 우안, 그랑 불바르와 팔레 르와얄, 스트라스부르그-생-드니 주변의 활기찬 도로 뒤편에 은밀하게 숨어 있다.
 18세기 말의 파리는 아직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길거리는 꾸불꾸불했고, 거기에 깔린 포석은 울퉁불퉁했으며, 인도도 없었고 하수도도 없었다. 가로등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밤에는 어두컴컴했다. 그러므로 파리를 산책한다는 건 엄청난 고역이며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게다가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차도까지 온통 진흙탕으로 변해 거리를 걷는다는 건 아예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사제계급과 귀족계급의 소유지를 몰수함으로써 넓은 면적의 부동산 개발이 가능해져 아케이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아케이드 중 하나인 카이르 아케이드는 1799년 수녀원 자리에 세워졌다. 그와 동시에 신흥부자 계급이 출현하고 나폴레옹 전쟁도 끝나 평화로워지면서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중동 국가들의 시장을 모델로 하여 햇빛이 큰 유리창을 통해 직접 쏟아져 들어오게 되어 있는 아케이드의 출현은 이집트 원정 이후 파리에 몰아닥친 동양풍의 유행과 일치한다. 처음에는 아케이드의 골조가 나무로 되어 있었으나 차츰차츰 19세기 초에 크게 유행한 쇠로 바뀌었다. 일부 아케이드들은 지방으로 떠나는 마차들이 모여 있는 정류장 근처에 있어 여행객들을 손님으로 끌어모았다. 이런 아케이드에는 여행자들이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큰 시계가 붙어 있었다.


    

                                                                                                                  


 <신상품>을 파는 가게들 옆에는 카페와 독서실, 문학 살롱, 목욕탕, 화장실까지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아케이드는 19세기 전반 파리 최고의 산책장소가 되었다. 그랑 불바르 주변에 집중되어 있는 연극공연장에서 연극을 보고 나온 사람들은 가스로 난방과 조명을 하는 밝고 따뜻한 아케이드에서 사교활동까지 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오스만(Haussemann)에 의해 큰 기차역들이 세워지고 양쪽에 인도가 설치된 넓은 길들이 여기저기 뚫리면서 150개에 달랬던 아케이드는 사양길을 걷는다. 같은 시기에 백화점까지 생기면서 사람들은 아케이드를 완전히 버려 지금은 20개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아케이드가 비비안 아케이드다. 장-폴 골티에르와 유키 토리이 같은 고급 부티크와 아 프리오리 테 같은 찻집, 오래된 고서점, 장난감 가게, 식당 등 다양한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특히 자주 비가 내리는 파리에서는 훌륭한 산책 장소가 된다. 루브르 미술관이나 오페라에서도 멀지 않으므로 한번 들려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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