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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18. 2018

프랑스를 걷다 - 아를 편 1
      

          반 고흐의 다리

 

  프로방스의 아를이라는 도시에는 반 고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반 고흐의 다리입니다. 
고흐는 1888년 2월에, 즉 서른 다섯 살 때 아를로 내려가 1889년 5월에 근처의 마을 생레미드프로방스 정신병원으로 들어갈 때까지 1년 3개월 동안 아를에 머물렀습니다. 
이 기간에 그는 아를에서 부크라는 곳까지 이어진 선박항해용 운하에 걸쳐진 12개의 도개교 중 하나를 화폭에 담았지요. 이 도개교는 그걸 열었다 닫았다 하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랑글르와 다리라고 불렸고, 지금은 흔히 반고흐 다리라고 불립니다. 




 


 



고흐는 이 다리를 주제로 10여 점을 그렸는데, 이 운하를 설계한 사람이 네덜란드 출신 기술자라 특별히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껴서였다 하고 또 그런 내용으로 편지를 써보내기도 했습니다. 파리의 몽마르트르에서 동생 테오와 함께 2년 동안 생활하면서 파리 화단에 환멸을 느끼고 아를로 내려온 그였던지라 더더욱 고향 생각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건 불어가 서툴렀던 고흐는 랑글르와(Langlois)를 앙글레(l'Anglais. 영국사람이라는 뜻)로 잘 못 알아들어 "영국인 다리, 영국인 다리..."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반고흐 다리는 고흐가 그림을 그렸던 그 다리가 아닙니다. 원래 아를 시내에 있던 진짜 다리는 45미터나 되는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되면서 없어졌습니다. 



1902년 당시 원래 자리에 있던 진짜 랑글루아 다리


그렇다면 우리가 아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운하에서 볼 수 있는 반 고흐 다리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은 12개의 다리 중 포스쉬르메르라는 곳에 있는 다리 하나만 남겨놓고 다 파괴해버렸지요.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 다리를 분해한 다음 지금의 장소에 다시 세워놓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다리. 원래의 자리에 있지 않다

         

                        https://www.thefrenchcollection.net/blank-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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