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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18. 2018

프랑스를 걷다 - 파리 편 2

  몽마르트르 묘지, <춘희>의 무덤

예술은 영원하다, 사랑도 영원하다



파리의 묘지에 가보면 누가 갖다 바치는지 모르지만 늘 꽃이 놓여 있는 무덤이 있는데, 대부분 예술가들의 무덤이다. 우리에게 춘희로 알려져 있는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sis, 1824-1847)의 무덤도 그중 하나다. 
원래 이름은 알퐁신인 그녀는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호텔 하녀와 우산공장 직공으로 일하다가 결국 가난을 견디지 못해 14살 때 파리로 올라왔다. 파리에서도 세탁부와 모자공장에서 일하던 그녀는 한 부유한 상인의 정부가 되었다가 눈부시게 환한 미소와 탁월한 미모, 우아한 분위기로 사람들의 눈을 끌어 16세 때 파리에서 남자들이 가장 많이 찾고 가장 비싼 유녀[courtisane,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미모와 교양을 갖춘 고급기생 정도 될까? ]가 된다. 




그녀의 애인이기도 했고 그녀를 <춘희>에 등장시켜 불멸의 존재로 만든 아들 알렝상드르 뒤마는 그녀를 이렇게 묘사한다. "키가 크고, 날씬했으며, 머리는 칠흙처럼 검었고, 자그마한 얼굴은 장미빛을 띠었으며, 입술은 체리처럼 붉었고, 새하얀 치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어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그녀는 미인이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다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읽고 쓰는 법을 익히고 책을 읽었으며 피아노도 배워 모든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적 수준까지 갖추면서 그녀와 함께 공적, 사적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돈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남성들이 그녀가 카퓌신 거리에 있던 집에 운영하던 살롱에 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녀는 명문가의 참한 규수처럼 언행이 신중하고 조신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총명하고 활달해서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은 그녀가 유녀라는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연극 <춘희>의 포스터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춘희


그녀는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와 프란츠 리스트의 애인이었다가 1846년에 런던에서 에두아르 드 페리고 백작과 결혼한다. 그러나 백작의 집에서 반대가 심하자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마들렌 성당 근처에 살던 그녀는 결핵에 걸리고 경제적으로도 파산,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채 1년이 채 안 되어 눈을 감는다. 애인이었던 구스타프 폰 스탁켈베르그 백작과 남편이었던 드 페리고 백작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설 <춘희>의 표지



그리고 또 한 명의 애인이었던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는 한 편의 시를 그녀에게 바친다.

"불쌍한 여인 같으니! 그대의 임종 때는
단 한 남자만 옆에 있다가 그대의 눈을 감겨주었고
당신이 묘지로 실려갈 때는 
그 많던 남자들이 경우 두 명으로 줄어들었다면서!"

그러나 이처럼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던 그녀는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춘희>에서는 마르그리트 고티에로, 베르디가 작곡한 <라트라비아타>에서는 비올레타 발레리로 다시 부활하여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예술은 영원하다. 
그리고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는 그녀의 무덤에서 100미터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누워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 사랑도 영원하다.


  

아들 뒤마의 무덤


 https://www.thefrenchcollection.net/blank-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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