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밥이 없으면 못 살 듯 프랑스 사람들도 바게트가 없으면 못 산다. 가정에서도 매끼 바게트가 든 바구니가 밥상에 가장 먼저 올라오고 식당에서도 본 메뉴를 서비스하기 전에 얇게 자른 바게트를 담은 바구니를 내온다. 배가 몹시 고픈 사람은 바게트를 그냥 우적우적 씹어 먹기도 하고 거기에 잼이나 버터, 치즈를 발라 먹는 사람도 있다. 또 바게트를 반으로 잘라 거기에 고기나 야채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면 바게트에 남은 소스를 발라 먹는 모습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프랑스 사람들이 제대로 잘 구어진 맛있는 바게트를 찾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잘 지어진 밥을 찾듯 그들도 바삭바삭하게 구운 바게트를 선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 사람들은 매년 4월에 개최되는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바게트 선발대회> 결과에 촉각을 세운다. 여기서 선발된 빵집은 일 년 동안 대통령이 사는 엘리제궁에 바게트를 납품하는 영광을 동시에 안게 된다. 이 선발대회에서는 가장 고소한 향기와 가장 부드러운 속살, 가장 찬란한 금빛을 띤 껍질, 가장 미묘한 맛을 가진 바게트를 가려낸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은 결선에 올라온 길이 50~70cm, 무게 240~340g 사이의 바게트들을 맛본 다음 그랑프리를 가려내게 된다.
프랑스 사람들이 이렇게 없으면 못 사는 바게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바게트라는 빵이 한 국가의 상징이 된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프랑스가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싶다. 물론 길이가 약 70 cm에 달하는 긴 막대기 모양의 바게트가 탄생한 것은 100여년에 지나지 않지만, 프랑스인들은 이미 로마 시대부터 빵을 만들어 먹었다. 특히 파리에서는 주변에 넓게 펼쳐진 보스 평야가 일종의 곡물창고 역할을 해냈기 때문에 밀을 풍부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 도시의 각종 동업조합들이 각각 돈을 각출해냄으로써 건립됐는데 그 중에서도 제빵업자 동업조합에서는 가장 많이 돈을 내서 네 개의 스테인글라스를 만들 수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그럼 프랑스에서 맛있는 바게트를 고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겉이 황금색을 띠어야 하고, 바삭바삭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의 속살은 크림 색깔을 띠되 너무 흰색이 아니어야 하고 만졌을 때 물렁물렁해야 한 것이 부드럽다. 그 뿐 아니라 작은 구멍들이 나 있어야 하고, 우유와 아몬드 맛이 살짝 나야 고소한 맛을 맛볼 수 있다. 껍질이 떨어져나가고 속살이 맛이 없으면 그건 냉동된 반죽을 썼다는 확실한 증거다.
대량생산되는 바게트는 반죽과 발효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속살이 희고 아무 맛도 없으며, 큰 구멍이 생겨서 금방 딱딱해져 버리는 단점이 있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슈퍼마켓에서 파는 바게트는 며칠 더 보관되기는 하지만 바삭바삭한 맛이 없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1960 년대부터 이 같은 방식으로 바게트를 만들기 시작, 바게트가 맛이 없어지면서 소비자들의 빵 소비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속살보다는 껍질의 비율을 좀 더 높인 길고 좁은 빵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8세기의 일이었고, 이 빵은 나오자마자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바게트가 황금색의 얇은 껍질과 덜 촘촘한 조직을 가지게 된 것은 효모 덕분이다. 제빵업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니 빵을 반죽하는 기계가 만들어져서 일이 한결 쉬워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파리 사람들은 이 길쭉한 빵을 선호하게 되었고, 20 세기 들어서면서부터는 이 빵이 프랑스 전역에 유행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옛날식으로 바게트를 만드는 제빵업자들이 늘면서 프랑스인들은 진짜 바게트를 다시 찾고 있다. 이 새로운 세대의 장인들은 품질 좋은 밀을 돌절구에 빻은 다음 오랜 시간에 걸쳐 반죽을 발효시킴으로써 바게트의 참 맛을 살려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 현재 프랑스 전역에는 약 3만5000군데의 빵집이 있어서 연간 320만 톤의 빵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빵 중에서 약 1/3 이 바게트로서 그 숫자는 하루에 천만 개 정도로 추산된다.
여기서 문제 하나. 왜 프랑스에서는 바게트를 사면 종이 봉투에 넣어주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빵이 금세 눅눅해지거나 딱딱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