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May 02. 2018

프랑스의 르퓌순례길 걷기 1

## 우선 말해두고 싶은 것은, 르퓌 순례길은 프랑스에 있고, 한국인들이 주로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에 있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유럽의 순례길을 걷는다는 것은, 프랑스의 르퓌 순례길과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2개월-2개월 15일 동안 걷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르퓌순례길을 2010년 4월에 처음으로 시작하여 2017년 9월까지 모두 다섯 차례 걸었다. 세 차례는 르퓌에서 생장피에드포르까지, 그리고 두 차례는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하여 르퓌까지 반대 방향으로...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750킬로에 달하는 길을 다섯 차례나 걷게 했을까?   


르퓌 순례길의 오브락 고원(해발 1.300미터)을 비를 맞으며 넘어가는 순례자들



 프랑스를 가로지르는 네 개의 순례길 중에서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바로 비아 포덴시스, 즉 르퓌 순례길이다. 르퓌 순례길은 프랑스 제 3의 도시인 리옹에서 남서쪽으로 110킬로 가량 떨어진 종교도시 르퓌(르퓌앙블레)에서 출발, 남서쪽으로 걷다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생-장-프에-드-포르에서 끝나는 750킬로미터의 길이다. 하루에 평균 25킬로미터를 걷는 순례자라면 30일만에 생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르퓌길을 한 번에 걷는 사람도 있지만, 몇 번씩 나누어 걷는 사람들도 많다. 생장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가 서쪽 끝 산티아고까지 이어진 길이 바로 한국인들이 많이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이 길 역시 한 달 정도 소요된다.


    

지도 맨 오른쪽의 LE PUY에서 왼쪽 아래 SAINT-JEAN-PIED-DE-PORT까지 빨간색으로 이어진 게 르퓌순례길이다



 지난 2015년에 이 르퓌 순례길을 걸은 순례자의 숫자는 모두 54,329명이며, 이 숫자는 해가 거듭될수록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이 길이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볼만한 문화유산도 많고 풍경도 다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순례자에게 매우 편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르퓌 순례길에 위치한 크고 작은 도시나 마을에는 다양한 가격과 편의시설을 갖춘 숙박업소들이 즐비하다. 이 숙박시설에서는 숙박과 저녁식사(전식과 본 요리, 후식, 포도주로 이루어진다), 아침식사가 제공되는데, 35-40유로 정도 한다. 점심식사는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이 르퓌 순례길이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은 또한 순례길에 위치한 도시나 마을 사람들이 순례자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매우 호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세 초기, 르퓌에는 동방에서 가져온 신비로운 검은색 마리아 목상(木像)이 있어서 이미 5세기 때부터 신자들이 몰려들었다. 야고보 성인의 묘지가 발견되고 나서 1세기가 채 지나지 않아 르퓌의 고데스칼크 주교와 그의 수행원들은 성모마리아를 숭배하는 이 도시에서 갈리시아 지방까지 멀고도 먼 여행을 떠났다. 이때가 950년. 이들은 산티아고까지 간 프랑스 최초의 순례자들로 알려져 있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데스칼크는 미셀 데길레 성인을 모시는 예배당을 세웠다.



르퓌(LE PUY)


르퓌는 레이스로 유명한 도시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레이스를 짜는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레이스박물관이 있고, 구시가지에서는 섬세하게 짠 레이스 세공품을 파는 가게들을 볼 수 있다. 나는 레이스를 짜는 저 나이든 여성을 보며 파스칼 레네가 쓴 <레이스 뜨는 여자>의 주인공 뽐므를 떠올렸다.
"그녀의 길지 않은 손가락은 뜨개질 연습을 할 때면 열에 들뜬 듯 움직였다. 그 손놀림은 그녀와 거의 따로 노는 듯 보였지만 그녀 안에 존재하는 섬세함과 육중함의 통일성을 깨트리지는 않았다...."

  

   

 

Copyright, 2018. 이재형.

  2017년 르퓌순례 당시 이 할머니 순례자는 85세였습니다. 내가 만난 순례자 중 최고령자이셨죠. 하지만 이 분은 숙소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 가장 먼저 출발하고, 다음 숙소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우리 말로 하면 짱할머니였습니다. 



이재형 작가(카카오톡 아이디 korearoad25)는 20년째 프랑스에 살면서 113종의 불어 도서를 번역하였다.

(<나는 걷는다 끝>(베르나르 올리비에), <꾸뻬씨의 행복여행>(프랑수아 를로르),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그로), <세상의 용도>(니콜라 부비에), 등). 2019년 12월 출간 예정인 본인의 저서 <프랑스를 걷다>에서는 파리와 르퓌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겼다. 

한국에서 프랑스의 풍경을 담은 두 차례의 사진전을 연 사진작가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도 튼튼한 2천년전 로마다리 <퐁뒤가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