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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May 06. 2018

프랑스의 르퓌 순례길을 걷다 2

-르퓌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순례길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나보다. 다들 서로가 순례자라는 것을 알자마자 곧장 서로를 Vous가 아닌 Tu로 스스럼없이 부른다. 아마도 같은 목표를 갖고 걷는다는 사실 자체가 서먹함을 없애주는 것 같다. 
나는 이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고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들 중에서 첫번째는 클로드다. 그는 예순세 살(2010년 당시), 은퇴자다. 그리고 아비뇽에 산다. 


  



르퓌에서 출발하여 첫날. 깜빡 표지판을 잘못 읽어 길을 잃는 바람에 10킬로미터 이상을 더 걸으며 헤매다가 지치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먹어 배가 주릴대로 주린 상태에서 밤늦게 숙소에 도착했을 때 주인조차 집으로 돌아가고 없는 덩그런 숙소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던 순례자가 바로 그다. 그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을 굴리며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함께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는 동안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처음보는 이방인인 내게 털어놓았다. 
부르고뉴 지방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 통신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리하여 신생 통신업체의 운영을 위임받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키워놓았으나, 그 때마다 실권을 가진 투자자에게 해고당했다고 한다. 
그가 가졌던 직업만도 열다섯 가지나 되는데, 통신 분야는 물론 부동산업자, 건물관리인, 종묘장 주인 등 다양하고, 그 바람에 프랑스 전역의 도시를 이곳저곳 돌아다녀야만 했다.그러나 그가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고생을 했던 것은 가족들 때문이었다. 20대에 결혼을 했으나 부인이 우울증을 앓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간이 많아 자식들을 돌볼 수 없어 그는 세 아이를 혼자 키워야만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이혼을 했고, 40대에 새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얼마 동안 살았다. 하지만 큰 딸이 사춘기가 되자 새 어머니와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결국은 그녀와 갈라서야만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몇 년 뒤에 다시 좋은 여자를 만나 살림을 합쳤지만 이번에는 사춘기가 된 아들놈이 같이 살기 싫다고 나섰다. 그래서 또 눈물을 머금고 헤어졌다. 이제 그 자식들은 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가 자신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이해하는듯 하다고 한다. 
이제 그는 은퇴하여 아비뇽에 아파트를 사서 혼자 산다. 그는 얼마전에 이사한 아파트에 짐도 다 풀지 않은 상황에서 순례를 떠났다. 프랑스에서 흔히 제 3의 나이(3ieme Age)라고 부르는 은퇴기를 정신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다. 
식사가 끝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을 때 그는 내 배낭과 신발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어디 소풍이라도 가는 사람처럼 작은 배낭을 들고 조깅용 신발을 신고 갔던 것이다. 그는 이윽고 자기 배낭을 뒤지더니 오르막길에 대비한 근육강화제라든지 초콜릿, 건강보조식품 등 나는 생전 본 적도 없는 물건들을 이것저것 내놓았다. 그리고 방에서 나가더니 다른 순례자들이 놓고 간 등산화도 하나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내 신발로는 눈 쌓인 오브락 고원을 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나는 무릎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깊게 쌓인 오브락 고원을 혼자 낑낑대고 걸으며 그에게 무진 감사했다.


   



순례길을 걷는 그는 온갖 삶의 무게에서 벗어난 듯 발걸음도 가볍고 홀가분해 보였다. 어쩌면 순례길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뒤로 우리는 만났다 헤어지기를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그래서 순례는 삶과 흡사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시종일관 나를 "내 한국인 동생"이라고 불렀다. 나도 그가 프랑스 형처럼 여겨졌지만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내가 르퓌길 순례를 마쳤을 때 그는 내 옆에 없었다. 내심 서운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스페인의 프랑스길을 걷는 그가 무사히 여행을 마치기를 기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와 함께 길을 걷는 한국인 청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청년은 클로드와 함께 걷고 있다며 클로드가 내 소식을 궁금해한다고 전해주었다. 나는 클로드와 통화를 하는 동안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정말 내 친구가 된 것이다. 그는 두 달이 넘게 걸리는 순례를 마치고 6월초에 아비뇽으로 돌아가 은퇴자로서의 새 삶을 시작할 것이다.


    

                       

                                               www.thefrenchcollection.net/blank-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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