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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01. 2018

돌고도는 역사, 파리 방돔광장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방돔 광장은 프랑스 고전주의 예술의 화려함을 한눈에 보여준다. 베르사유 궁전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이 광장은 태양의 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의 치세를 지배하는 원칙들을 구현한다. 즉 프랑스 군주제의 위대함이 단순한 선과 순수한 형태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프랑스 고전주의를 통해 강조되는 것이다.  

과연, 베르사유 궁을 설계한 아르두앵 망사르가 이 광장의 8각형 형태를 설계, 1685년과 1695년 사이에 앙리 4세와 그의 정부인 데스트레 사이에 태어난 아들 드 방돔 공작의 집터에 세웠다. 완공 당시 이 광장의 북쪽에는 카퓌신 수도원이 있었고 남쪽에는 튈르리 공원이 있었다.

원래 루이 14세는 이 광장 주위에 관공서 건물들을 세우고 그 한가운데 자신의 동상을 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고, 대신 루이 15세가 1720년에 개인주택들을 짓게 했다. 어쨌거나 광장 가운데에는 루이 14세의 동상이 세워졌고, 이 당시 광장은 루이 대왕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군주제를 상징하는 이 광장은 공격을 당했고, 루이 14세 동상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1791년 외국으로 도망치려다가 바렌느에서 붙잡힌 루이 16세는 이곳을 통해 지나가며 광장이 쑥대밭이 되는 걸 보고 탕플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13번지에 있는 법무부 건물 발코니에서 프랑스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건물이 원래는 사기를 쳐서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프와송 드 부르발레의 집이었던 걸 그를 석방시켜주는 대가로 넘겨받았다는 사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모습의 광장은 나폴레옹 1세 때 조성되었다. 그는 1804년에 로마 트라얀 기둥의 모습을 본딴 기둥을 이 광장 가운데 세우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오스테를리츠 전투 당시 적군에게서 포획한 1200문의 대포를 녹였고, 이렇게 녹여 얻은 동을 총 44미터에 걸쳐 프랑스 대군의 위업을 보여주는 조각을 새겨 돌에 나선형으로 휘감았다. 그리고 기둥 몇 꼭대기에는 나폴레옹 동상을 세웠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도는 법. 파리코뮌이 일어났고, 1871년에 이 기둥은 붕괴되었다. 1875년, 제 3 공화국 정부는 이 기둥을 다시 원래대로 세워놓기로 결정했다.





지금 이 광장 주변에서 사는 개인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는 모조리 고급 부티크들이다. 결국 자본주의가 방돔 광장을 점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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