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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Jun 27. 2018

프랑스 미술관 걸작 탐방 2

 <샤를 7세의 초상화>와 <귀욤 주브날 데 위르생의 초상화>, 장 푸케(1415?1420 - 1478?1481), 루브르 미술관, 리슐리외관 프랑스 회화, 6번 방.


장 푸케는 초기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이자 프랑스 15세기 회화의 개혁자다. 하지만 그나 그의 회화적 경력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고, 그가 그렸다고 알려진 그림들도 정말 그가 그린 것인지 여전히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어쨌거나 국제고딕양식의 프랑스적 전통 속에서 그림교육을 받은 그는 고딕양식의 매우 강렬한 색조와 이태리 카트르첸토양식의 원근법 및 초기플랑드르양식의 자연주의적 쇄신을 결합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의 걸작으로는 <믈룅의 2장 접이그림>과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가 꼽힌다. 이 두 개의 그림은 루브르에 있지 않다. 


   

믈룅의 2장 접이그림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



잘 푸케의 초상화들은 그가 모델들의 개성을 읽어낼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전까지만 해도 일종의 마이너 장르였던 초상화는 15세기 들어 주요한 장르가 되었다.



귀욤 주브날 데 위르생의 초상화


1) <귀욤 주브날 데 위르생의 초상화>, 1460년에서 65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

귀욤은 샤를 7세에 이어 루이 11세 때도 왕의 국새상서, 즉 왕의 지시를 기록하고 실행하도록 명령하는 프랑스의 제 2인자였다. 
푸케는 이 두 왕의 측근들 초상화를 많이 그려는데, 이 작품도 그중 하나다. 
이 그림에는 귀욤의 가문을 상징하는 표시가 많다. 작은 장미들과 어린 곰들이 보이는데 그것이 귀욤이 속한 오르시니 가문의 상징이다.



샤를 7세의 초상화


2) <샤를 7세의 초상화>(1450-1455년 사이로 추정)

샤를 7세가 몸을 살짝 옆으로 튼 채 커튼 사이에 앉아 있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백 년전에 그려진 <용감한 자 장 2세>의 초상화에서처럼 이 그림에도 역시 그가 왕이라는 걸 보여주는 상징물이 안 보인다. 대신 내려앉은 매부리코라든가 작은 눈, 둥근 턱, 눈 밑 주름 등 신체적 특성들이 강조되어 있다. 그래서 프랑스 예술사가인 샤를 스테를링은 이 그림이 "군주의 위엄있는 초상뿐만 아니라 무기력하고 지친 한 인간의 모습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샤를 7세는 누구일까? 1439년에 태어나 1461년에 죽었고, 1422년에서 1461년까지 프랑스 왕을 지냈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가 아는 잔다르크 덕분에 왕이 될 수 있었던 인물이다. 1429년 랭스에서 대관식을 했고, 1459년에는 영국군을 프랑스 영토에서 몰아내고 백년전쟁을 끝냈다. 
1429년 프랑스가 대내적으로는 아르마냑파와 부르기뇽파가 싸움을 벌이고 대외적으로는 영국군이 아젱쿠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뒤로 군사개입을 시작한 와중에서 샤를 7세는 왕이 되었으나 정통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실권도 갖지 못해 그가 살던 르와르 강변도시 "부르쥬의 왕"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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