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 중반엔 자존감이 낮았다. 아무리 '난 될 거야'하며 감추려 애써보아도 온몸으로 감추는 태도에서 '나까짓게'하는 바닥난 자존감이 보였다.
한 번은 보다 못한 친구가 한마디 했다.
"옛날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이래? 항상 자신감에 차서 네가 부럽고, 존경스러웠는데 요즘 보는 넌 좀 실망이야."
그 말에 내 당찼던 모습들이 스쳐갔다. 정신이 들었다. 안 된다는 생각에, 못한다는 생각에 쩌든 모습이 스스로도 실망스러웠다.
어쩌면 안 되길 바랐는지도 몰랐다. 잘 될 자신이 없어서. 그럼 안 된다는 핑계로 위로와 위안을 삼아 좋은 구실을 만들었다. 큰맘 먹고 상경했다는 서울도, 타지서 혈혈단신 살아남는 것도 벅차 차마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핑계대기 좋은 도시였다.
나의 꿈의 도시 서울을 뒤로하고 본가로 돌아왔을 땐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몸에 온기가 차기 시작했다. 집에서 15분을 걸으면 나오는 카페에서 일을 했는데 예전부터 날 한 번에 좋아하게 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지게 하는 건 자신 있었기에 그저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고작해야 하루에 5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지각 한 번 없이 주 6일을 25개월 동안 열심히 다녔다. 그건 서울에서 느낀 나란 사람의 나태함과, 비겁함, 무능력함을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카페 사장님은 30대의 젊으신 여자분이셨다. 호주에서 10년을 사셨던 데다가 트렌드에 빨라 감각이 좋으셨다. 덕분에 옆에서 새로운 정보나 새로운 세상을 기민하게 얻어갈 수 있었다. 브런치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내가 못 먹어봤던 식재료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고트치즈, 루꼴라, 하몽, 트러플 오일, 바질 등. 특히 고트치즈는 처음엔 외양간 맛이 난다고 느꼈고, 하몽도 그 특유의 누린내가 거부감이 들었지만 계속 접해보니 직접 사 먹게 될 정도로 취향 안에 들었다.
사장님과 있으면 이래서 사람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구나 싶을 만큼 새로운 것에 주저하지 않는 순간들이 늘어갔다. 맨 처음 이곳에 취직해서 사장님의 어머니를 만나게 됐을 때 내게 하신 말씀이 있다. "언니를 도와 열심히 일해주라, 옆에 있으면 진짜 얻는 게 많다."
처음엔 옆에서 무엇을 얻는다는 걸까 싶었지만 그 의문이 무색하게 그곳에서 난 점점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