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가 없다는 건 굉장한 장점인 줄 알았는데 내겐 해당사항이 없었나 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경계. 그 선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내 입에선 언제나 모호한 답변만 나왔다. 좋아하는 걸 너무 좋아하지도 싫어하는 걸 싫어하지도 못했다.
남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내게 도움 될 거라 여겼다. 그 사이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구분 못하게 되는 내가 되어가는 줄도 몰랐다.
상냥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되도록 거절을 적게 하고, 속으로 말을 삼켜 웃음으로 답을 했다. 종국엔 스스로에겐 더욱 치명적이고, 악해져 갔다. 남에게만 상냥한 사람.
아주 나쁜 나. 아주 못된 나.
나는 아무에게 힘을 얻지도, 위로를 받지도, 화를 풀어내지도 못하는데 넌 어디서 상냥을 베풀고 있는 거지. 넌, 남에게 상냥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야.
상냥하다는 건 한참 다정한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한참이란 말을 스리슬쩍 빼고 싶었다.
말을 나긋나긋한다고 해서, 화를 참는다고 해서 상냥한 사람의 정의가 되는 건 아니다.
난 이제껏 상냥하다는 것의 의미를 곡해하고 있었다. 친절을 베풀면 나에게 돌아온다는 말은 꽤 틀릴 때가 잦았다. 그러나 또 친절을 오해했을 테다.
"나나 잘해."
나나 나한테 잘해. 생각하는 의자에 앉히듯 무심한 마음을 붙잡아 놓고 다짐했다.
싫습니다, 싫어요. 거절을 한 두 번 하다 보니, 가벼워봐야 깃털만 한 무게가 존재하겠지만 겨울 이불을 여러 겹 덮은 듯 무거운 일은 횟수가 줄었다.
지속적인 훈육의 끝에 이제 좀 싹수가 보이려고 한다.
"나 나한테 잘해."라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