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퍽했던 서울에서의 두 해를 지내고 자취 생활을 정리했다. 큰 꿈을 부응할 수 없던 내 나태함과 모자람들을 확인한 쓴 내 나는 시간이기도, 겨울엔 동파, 여름엔 비가 새 바람 잘날 없는 이벤트를 선물해 준 짠내 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코로나까지 터져 계약 연장도 되지 못해 잘리듯이 일자리를 잃고, 하루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한 날들. 그것을 종합한 삶을 견디다 못해 살고 싶어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살고 싶다고 하면 엄살 부린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땐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느끼고 있다 깨달았을 때 하릴없이 울고 싶었다. 우울증을 겪어본 자로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그것을 반복하는 것인데 난 어렴풋해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돌아갈 집이 없는 것도, 반기지 않을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괜스레 동조를 원하듯 외로운 티를 잔뜩 내보이고 허락을 구했다. 가족들 옆에 있고 싶다고, 그곳은 아직 쓸쓸하다고 어리광을 부리며 내 마음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얘기했다.
말려도 행했던 서울행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것보다 외롭다는 게 나약하고 정신이 독립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 같아 그게 창피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쳤다. 그럼에도 나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게,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강인했다. 그러니 숨어서 쓸쓸함을 홀로 간직했던 과거의 나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놓는 지금의 내가 훨씬 강한 사람이 됐음을 의미했다.
그렇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딱 한가지 걱정만 하면 됐다. 돈 벌 걱정. 여긴 사랑과 행복과 우정과, 안정 모든 것이 충분했다. 기댈 구석이 곁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구심점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