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Mar 22. 2018

부러움과 자기 비하의 상관관계

누군가에 대한 칭찬은 곧장 나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고양이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종종 들르던 카페 고양이 ‘하하’를 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하하는 팔자 좋게 늘어져 있다가 손님이 오면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흡사 관상을 보는 자세였다. 드나드는 사람이 없으면 다시 창가로 옮겨 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봤다. 그리하여 고양이만큼이나 할 일이 없던 휴학생은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고양이로 태어났다면 뭔 생각을 하며 지냈을까.’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나라면 창밖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데 온 시간을 썼을 테다. 


사실 인간일 때(?) 하는 생각도 별로 다르진 않다. 세상엔 잘난 사람이 너무 많다. 주변만 둘러봐도 부러워할 사람이 한 트럭이다. 우선 9년 지기 D의 친화력. 워낙 누구하고나 잘 지내서 주변 사람들이 “넌 김정은 위원장이랑도 친구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특유의 유쾌함으로 분위기도 잘 띄워서 다들 D를 편하게 여긴다. 요즘 자주 부러워하는 건 선배 S의 화술인데, 선배는 어떤 상황에서도 정색하는 법이 없다. 웃는 낯으로 그렇지만 단호하게 의견을 이야기한다. 나는 사람 좋은 척 끌려다니다 궁지에 몰리면 무는 쥐 타입 인간인지라, 선배를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생의 모든 일에 산뜻한 태도로 임하는 H(그의 자세는 절박하지 않아 우아하다), 쥐뿔 없어도 마음이 부자라 자유로운 J도 부럽다. 


우물 밖으로 갓 나온 개구리 시절, 내게 ‘부러움’은 일종의 연료였다. 먹다 버린 과자 봉지처럼 의욕 없이 늘어져 있다가도,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느끼면 벌떡 일어섰다. 덕분에 소소한 발전도 있었다. 비키니 입은 과 동기에 자극받아 다이어트를 시작하기도(망했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깊은 남자를 만나 철학책을 사기도 했다(안 읽었지만). 부러움의 감정을 나름 긍정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그렇게 쭉 평화롭게 공존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오래가지 못했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풍경이 내 안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유미의 세포들>은 주인공의 머릿속에 세포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는 세계관 아래 진행된다. 식욕, 성욕, 소비욕 등 온갖 욕구들이 각각의 세포로 존재하는데, 특정 세포의 힘이 세지면 마을의 평화가 깨진다. 배가 고프면 식욕 세포인 출출이가 거대해져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식이다. 그 상태의 출출이는 이성도 감성도 말릴 수 없다. 


습관처럼 다른 사람을 부러워한 탓에 내 머릿속의 대장 세포는 부러움이 됐다. 갑자기 강력해진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감과 자존감을 마을 밖으로 몰아냈다. 그러곤 시기, 질투, 열등감 같은 놈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마을을 점령했고, 누군가에 대한 칭찬은 곧장 나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쟨 저렇게 잘났는데, 넌 왜 그래? 넌 언제쯤 누가 부러워할 만한 사람이 될래?” 


부러움은 꽤 오랫동안 마을을 지배했다. 조건 없이 나를 예뻐해주는 이도 만났고, 어깨를 으쓱할 만한 성과도 냈지만, 소용없었다. 요새 좀 잠잠한가 싶으면, 어느새 존재감을 과시하며 난동을 부린다. 그래선지 나의 오랜 친구들은 내가 누군가를 칭찬하면 혀부터 끌끌 찬다. 또 시작이다 싶어 속상한 마음일 테다. 얼마 전엔 앞서 이야기한 D가 술이 좀 돼서 전화를 했다. 


“어디서 봤는데… 파슬리 키우는 농부한테 파슬리 대부분이 장식으로 쓰이다가 버려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대. 그랬더니 농부가 충격 받은 얼굴로 ‘맛있게 키우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대. 너희 어머니도 같은 심정 아닐까…. 사실 나도 좀 그래.” 


아, 파슬리…. 나는 언제쯤 파슬리임을 인정하고 고기 부러워하길 그만둘 수 있으려나. 아무래도 기약이 없어 못 들은 척 딴소리를 했다. “이제 겨울 다 갔나보다. 밤인데도 안 춥네.”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주문

파슬리가 고기를 부러워하면 불행해집니다.




ILLUSTRATOR liz

매거진의 이전글 복세편살은 아무나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