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혜원 Jun 06. 2019

잡생각이 많은 사람을 위한 취미 생활

재미로 시작한 일인데 어느새 잘 하고 싶어서 안달을 내고 있었다


비생산적으로 살고 있다는 자책

“나 요즘 아무 것도 안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친구 A가 말했다. “나도 맨날 놀아. 노답임.” 매일 토익학원에 가는 친구 B가 지지 않고 말했다. “나도 진짜 생각 없이 살아. 완전 비생산적이야.” 어제도 야근한 직장인인 내가 덧붙인다. 


친구들과 만나면 의도치 않게 ‘한심함 배틀’이 붙는다. 웃긴 건 우리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꽉꽉 채워 사는 사람들이란 거다(고작 주말 이틀 쉬면서 스스로를 나태하다고 평가하는 게 다시 봐도 이상하다).


생산적으로 산다는 건 뭘까. 일상을 충분히 책임지고 있음에도 왜 우리는 자책을 할까.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잘 거 다 자고, 쉴 거 다 쉬고, 놀 거 다 노는 삶으론 왜 뿌듯해할 수 없는 걸까.


사실 우리라고 가져다 붙였지만 내 이야기다. 시간도 써본 놈이 쓴다고 평생을 쫓기며 살았더니 여유가 생기면 불안하다. 어딜 가도 나보다 잘난 놈들은 있기 마련인데, 굳이 그들을 찾아보면서 괜히 초조해한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왠지 뭘 더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이러다 뒤처지는 거 아닌가? 몸은 쉬는데 머리는 복잡한 상태가 지속된다. 이러니 쉬어도 쉬는 기분이 안 들지. 내 생각에 비생산적이라는 자괴감에서 해방되려면 최소 투잡 이상은 가져야 할 것 같다.




취미인데 왜 즐기질 못 하니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상태를 못 견디는 인간이다. 멍하니 있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틀림없이 잡생각을 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 과거에 대한 후회, 시기, 질투, 미움, 기타 등등. 가만 보면 나는 스마트폰에 봉인된 채 침대에서 빈둥거릴 때 나쁜 생각을 제일 많이 한다.


죄책감 없는 주말을 위해 나는 꽤 오랫동안 취미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 시간을 놀이나 쉼으로 받아 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관심이 가는 것들은 전부 내가 잘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이었고, 잘 하고 싶은데 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즐겁지 않았다. 재미로 시작한 일인데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비교’라는 놈이 따라 붙어서 안달을 내고 있었다.


이를테면 선생님이 “00씨 그림 너무 좋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제일 잘해요.”라고 말한 후부터는 괜히 내 그림이 초라해 보여서 학원에 가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시작만 하고 접은 취미가 한 트럭이다.



잘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

그런 내가 요즘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고 있다. 처음엔 애인이 졸라서 마지못해 따라갔다. 솔직히 멀쩡한 집을 놔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일단 잡생각이 없어져서 좋았다.


캠핑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밖에서 자려면 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텐트도 쳐야 되고, 불도 피워야 하고, 장작도 쪼개야 하고, 밥도 해 먹어야 한다. 끼니 사이에 설거지하고, 커피 끓여 마시고, 볕 좋은 자리 찾아 의자 펴고, 낮잠 한숨 자면 하루가 금방 간다. 다음 날 새소리 들으면서 일어나 “아 공기 좋다” 하고 아침 먹으면 집에 갈 시간이고. 제시간에 텐트를 철수하려면 또 움직여야 한다. 도무지 생각 할 틈이 없다. 뭔가를 끊임없이 하니까 왠지 주말을 생산적으로 보낸 것 같아서 일요일 밤에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또 한 가지 캠핑의 큰 장점은 ‘잘’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제아무리 세상만사를 비교와 경쟁의 시각에서 보는 나라도, 캠핑장 안에선 비교할 건덕지를 찾을 수가 없다. 누가누가 불을 더 잘 피우나, 설거지를 빨리 하나 경쟁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동안 내가 해왔던 취미들은 능력의 차이가 명확히 보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캠핑의 경우 조금 더 잘 하고 못 하는 게 큰 의미 없는 활동이므로 무리하게 노력할 필요도 없고, 딱히 잘 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하면’ 된다. 유레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머리로만 꿈꾸던 ‘남 신경 쓰지 말고 내 할 일이나 하는’ 게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구나!(물개박수 짝짝)


예전에 인생의 의미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삶의 질은 다만 시간을 어떻게 때우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무것도 안 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괴로운데 그렇다고 일만 계속 할 순 없으니까. 적당히 재밌게 할 만한 소일거리를 찾아야 된다는 뜻.


새로 찾은 소일거리 덕분에 아마도 당분간은 죄책감 없는 주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892호 – think]

ILLUSTRATOR 강한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나까지 사랑해줘,가 안 통하는 이유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