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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n 15. 2021

일요일 오후 세 시에 할 수 있는 일들

무언가를 시작하긴 애매한데 그렇다고 하루를 포기하긴 아까운 시간

휴대폰 알람에 의지해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여덟시에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뒀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아침 알람을 켜둔 이유는 해야 하는 일 말고, 하고 싶은 일로 꽉 채운 하루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사항은 희망사항일 뿐. 보통은 익숙한 기계음을 듣고 깜짝 놀라 룰렛 위의 해적처럼 벌떡 튀어 올랐다가 주말임을 확인하고 도로 눕는다. 그러곤 오른팔로 천하태평하게 코 골며 자고 있는 김수현을 끌어안고 남은 팔로 시답잖은 클립 영상을 보다가 다시 잠든다(남편은 알람을 무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잠귀가 어두운 게 아니라 그냥 못 들은 척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은 다 듣고 대답도 곧잘 한다).


이차 기상 시간은 열두 시쯤. 푹 잤는데도 컨디션이 별로라 억울할 때가 많다. 머리는 무겁고 눈은 말라서 뻑뻑하다. 배달 음식을 시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나면 다시 잠이 온다. 그렇게 잤는데도! 여기서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먹다 남은 과자봉지처럼 집안을 뒹굴며 주말을 마무리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씻고 집 밖으로 나갈 것인가. 


날씨나 계절이 따라주는 날엔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두 시쯤 욕실로 들어간다. 밀린 드라마를 보며 나갈 준비를 하고 외출용 원피스로 갈아입으면 오후 세 시가 된다.

 


일요일 오후 세 시. 무언가를 시작하긴 애매한데 그렇다고 하루를 포기하긴 아까운 시간. 서른 살이 됐을 때 딱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시작하고 싶었던 게 뭐였더라.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도시에 가서 살고 싶었다. 여행 한정 좋은 인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고 싶었다.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는 먹고사는 일에 찌들어재미없는 인간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결국 이곳에 남아 틈틈이 자유로워지겠다는 애매한 선택을 하고 말았지만(갚아야 할 빚이 있는 사람은 보헤미안이 될 수 없다).

  

일요일 오후 세 시에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바람 쐬러 멀리 나가기엔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닌지 잠시 고민하다 내비게이션 검색 창에 괜히 ‘춘천’을 찍어본다. 편도 한 시간 51분. 역시 머네. 한편으론 왕복 네 시간이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집에 있어봤자 네 시간 내내 누워서 월요일 무섭다고 우울해하기밖에 더해? 고민은 출발만 늦출 뿐. 그런 의식의 흐름을 거쳐 우리는 볕이 가장 예쁜 시간, 일요일 오후 세 시에 다른 도시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곤 한다. 


언젠가 평론가 이동진이 블로그에 적어둔 글귀를 보고 크게 감탄한 적이 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그 말을 나 좋을 대로 해석하면, “서른에 새 출발을 하진 못했지만, 일요일 오후 세 시에 먼 곳으로 떠날  순 있지”가 된다. 

 

일요일 오후 춘천행 도로는 장애물 하나 없이 뻥뻥 뚫려 있다. 반대편 도로가 주차장처럼 꽉 막혀 있을 때도 춘천 방향은 ‘소통 원활’이다. 위치상 같은 구역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에 따라 도로 상황이 달라지는 게 매번 신기하다. 그런 날 두고 김수현은 이렇게 말했다. “그야 주말 다 끝났는데 이 시간에 서울서 강원도로 가는 차가 없기 때문이지?” 그렇다. 몇 시간 뒤면 해가 져서 사방이 캄캄해질 테니까. 그러면 내가 지금 달리는 곳이 서울인지 강원도인지 숲인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어질 거고. 굳이 멀리까지 이동한 의미가 없어진다. 요즘 말로 가성비가 좋지 않은 나들이다.


특별히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이 급한 게 아닌데도 우리는 매번 춘천 방향 가평 휴게소에 들른다. 해 지기 전에 목 적지에 도착하려면 당장 30분이 급하지만 여길 들러야 비로소 멀리 나온 기분이 난다. 왕터산(이름을 몰라 검색해봤다)을 병풍처럼 두른 가평휴게소는 경치가 꽤 좋아서 그냥 뒷마당 파라솔에만 앉아 있어도 여유롭다. 거기서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찐 옥수수나 미지근한 핫바, 불어터진 떡볶이 같은 

것들을 앞에 두고 다들 같은 얘길 하고 있다. “어디냐고?나 춘천 가는 길. 일요일에 서울 방향 도로는 너무 막혀서. 우린 반대로 가!”



일요일 오후 세 시에 먼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나서 ‘아는’ 도시가 많아졌다. 예전엔 모처럼 시간이 나도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현재의 나는 여행을 떠난 것처럼 확실한 기분 전환을 주는 장소를 여러 곳 알고 있다. 그리고 맘만 먹으면 그곳에 반나절 만에 닿을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용사가 되어 세상을 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게임이 있다(이런 허접한 묘사로 설명될 게임이 아니므로 제목을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갑자기 게임 이야기를 왜 하냐면 아는 도시를 하나씩 늘려가는 일이 이 게임의 어떤 부분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지형과 등고선 정도가 겨우 표시된 지도 한 장을 달랑 쥐고 모험을 떠나야 하는데 그렇게 막막할 수 없다. 주요 건축물의 위치나 적의 행방도 알려주지 않아서 어디서 무기를 얻어야 하는지 잠은 어디서 자야 하는지 모른 채로 허허벌판을 헤매야 한다. 이 지도는 플레이어가 해당 지역을 방문해야만 활성화 되는데, 일단 지도가 활성화되고 나면 모험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이 게임의 진가는 지도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고 나서야만 느낄 수 있다. 세계를 충분히 헤매지 않고 중간에 게임을 그만둔 사람(바로 나다)은 영영 알 수 없는 재미가 있다고 김수현이 말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우리나라에서 산 사람도 구석구석 다녀보지 않으면 어디에 좋은 곳이 있는지 어딜 가야 기분 전환이 되는지 잘 모른다. 직접 가서 허허벌판을 헤맨 뒤에야 해당 지역이 활성화되니까. 나에게는 한 도시를 세 번 이상 여행하면 그곳이 어디든지 사랑에 빠지게 될 거란 믿음이 있다. 재미없는 도시는 없다, 내가 잘 모르는 도시가 있을 뿐.


최근에 내 지도에서 활성화된 지역은 춘천이다. 춘천에 는 닭갈비랑 남이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자주 찾다 보니 인터넷에 올라온 곳 말고도 좋은 곳이 꽤 많다.  삼팔선이 춘천을 지난다는 사실도 춘천을 다섯 번쯤 여행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동안 춘천호 드라이브는 자주 했지만 늘 같은 장소를 목적지로 두고 최단 경로로 달렸기 때문에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삼팔선 휴게소의 존재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내비게이션을 끄고 달려야만 닿을 수 있는 장소도 있다. 


지난 주말엔 2020년 나의 춘천 지도에 새롭게 업데이트 된 마을 ‘원평리’에 갔다. 가로 방향으론 삼팔선이, 세로 방향으론 북한강이 흐르는 조용한 동네. 마을에 도착해서 아직도 해가 중천에 떠 있음에 안도하고 여름의 멋짐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곳에 어울리는 속도로 천천히 걸었다.

“여긴 캠핑장인가 봐! 지금은 영업을 안 하시는 건가? 지도 앱엔 안 뜨네.”

“고양이도 있다. 동네 사람들이 잘 해주나 봐. 사람을 안 피해.”

타박타박 걷다가 이전에 한 번 갔던 멧돼지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근처에 밥 먹을 만한 곳이 있는지, 영업시간은 언제까지인지 휴대폰을 붙잡고 초조해하지 않아도 될 때. 이곳이 ‘아는’ 동네라는 게 새삼 고마워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수현이 말했다. “반나절 나들이인데 꼭 긴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야.” 내가 답했다. “나도. 엄청 먼 곳에 갔다 온 기분이 들어.” 아무래도 일요일 오후 세 시의 나들이를 가성비가 좋지 않다고 평가했던 건 취소해야겠다. 


신간 <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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