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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n 08. 2021

매일 보는 것이 나를 만든다

“내 인생의 아름다움을 챙기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나밖에 없어.”

연말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귀여워지는 것이 좋다. “올해도 고생 많았어, 새해 복 많이 받아.” “너도 내년에는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 서로의 복을 빌어주는 다소 무책임한 다정함도 좋다. 즐거운 마음으로 연말 모임에 가지고 나갈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아껴뒀던 엽서를 꺼내 뻔한 말을 적기도 했다. 매년 같은 이야기. “나랑 친구해줘서 고마워. 내년에도 잘 부탁해.” 약속한 것도 아닌데 서로가 서로의 산타가 되어 선물을 주고받는 풍경이 때때로 그립다.  


당연하게도 2020년에는 연말 모임이 없었다. 엽서 대신 카카오톡 메시지와 기프티콘을 보내고, 거실 테이블 위에 트리 장식도 만들어 놓았는데도 영 허전했다. 뭘 해야 연말 분위기가 날까. 궁리하다 사진 정리를 하기로 했다. 1년 동안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연말 내내 틀어박혀 만 장이 넘는 사진을 월별로 폴더링했다. 어릴 때 엄마가 방정리하라고 시키면 서랍 속에 든 물건을 죄다 꺼내 추억 여행하느라 며칠씩 날려먹곤 했는데. 그 버릇 여전한가 싶었다. 


그렇게 사진 정리를 한참 하다가 새삼 쓸쓸해졌다. ‘올해 정말 코로나 빼고는 아무 일도 없었구나.’ 집에만 있다 보니 굳이 기록으로 남겨둘 만한 추억이 별로 없었다. 직접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고 SNS에서 주운 웃긴 짤 캡처본, 기사에 쓸 참고 이미지가 전부인 날도 꽤 많았다. 


새삼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보나’ 하고 반성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요가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면 좋을 텐데. 그래서 새해 다짐에 뻔한 항목을 하나 추가했다. ‘휴대폰 덜 보고 그 시간에 좋은 거 하기.


일러스트레이터 최혜령 作 @teummmm


<대학내일> 에디터 시절 나의 프로필 소개 글은 이거였다. “쓰거나 읽지 않을 때는 먹고 마십니다.” 이 문장을 생각해놓고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다며 자화자찬했던 기억이 난다. 눈을 뜨자마자 ‘볼 것’과 ‘마실 것’을 동시에 찾는다. 그래서 침대 옆 작은 탁자에 책 여러 권과 물 한 컵을 항상 챙겨두는데, 막상 선택하는 건 (뻔하게도) 휴대폰이다. 평범한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둘러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수 오혁 님은 눈 뜨자마자 시를 한 편씩 읽는다던데. 폰 만지고 싶은 욕구를 대체 어떻게 참는지. 비결이 궁금하다. 


안 그래도 휴대폰 중독인데 최근에 폰을 붙잡고 살 좋은 핑계가 하나 더 생겼다. <캐릿>이라는 미디어에서 트렌드를 소개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트렌드 당일 배송’이 콘셉트인 미디어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르게 유행을 포착 하는 게 주요 업무다. 덕분에 매일 SNS로 두세 시간은 우습게 날려버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에디터란 딴짓만 실컷 해놓고도 ‘나는 지금 업무를 위한 모니터링을 하는 중이야’라고 정신 승리 해버리기 쉬운 직업이다. 


인터넷 세계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중 9할은 몰라도 되는 것들. 그야말로 ‘가십’들이다. 불량 식품을 먹는 기분으로 그것들을 소비한다. ‘이거 몸에 안 좋을 것 같은데’, ‘먹으면 탈 날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도 관성적으로 페이스북 앱을 누른다. 어떤 이야기는 화학 물질을 넣어 만든 가짜 음식처럼 해롭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악의 가득한 글, 루머, 조롱, 사생활 침해, 기타 등등의 가십들이 두루마리 휴지처럼 줄줄이 등장한다. 경박한 호기심에 손가락을 맡기고 인터넷 세상을 헤매다가 정신을 차릴 때쯤엔 마음은 이미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다. 조금 오버스럽게 표현하자면 영혼 어딘가에 얼룩이 생긴 느낌이 든다. 


한 사람의 정서는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한다. 날씨, 음식, 직장, 학교처럼 일상을 이루는 것이 나를 만

는 셈이다. 그렇다면 내 정서는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 사는 동네만큼이나, 함께 사는 사람만큼이나, 자주 접하는 대상은 바로 ‘매일 보고 듣고 읽는 것들’이다. 끼니는 걸러도 SNS엔 매일 접속하니까. 그렇다면 요즘의 나의 정서는 가십인 걸까(깊은 한숨).


어쩌면 꿈에서 힌트를 찾을 수도 있겠다. 거의 매일 꿈을 꾼다. 내가 꾸는 꿈은 쓸데없이 투명하고 솔직해서 현실이 있는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안 풀리는 업무를 끌어 안고 끙끙거린 날엔 일하는 꿈을, 동료의 차가운 말투가 마음에 얹힌 날엔 원치 않는 싸움에 휘말리는 꿈을 꾼다. 언젠가는 SNS로 시답잖은 가십을 소비하다 잠들었는데, 꿈속에서도 내가 휴대폰을 쥐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어서 질색하며 일어난 적도 있다. 


물론 좋은 걸 많이 본 날엔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한다. 해변에 오래 앉아 있었던 날. 공기가 오렌지색에서 연보라색으로 천천히 바뀌어가는 걸 보며 맥주를 마시다가 방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으니 눈꺼풀 위에 보라색 파도가 일렁거렸다. 그날 꿈에 정말 끝내주는 풍경이 나왔다(그 와중에 직업병처럼 꿈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건강 상태 자가 진단 항목에 “일주일에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몇 회나 합니까?”, “얼마나 자주 술을 마십니까?” 뭐 이런 질문이 있는 것처럼. 나는 마음이 괜찮은지 점검할 때 “최근 일주일간 악몽을 얼마나 자주 꿨습니까?” 하 고 묻는다. 주 3회 이상 심난한 꿈을 꾸고, 자다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면 의사 선생님을 대신해 잔소리를 해야 할 타이밍이다. 


“좋은 것도 좀 보면서 사셔야 해요.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키우고 싶으신 건 아니시죠? 휴대폰 내려놓고 음악이라도 들으세요.” 


어떤 종류의 잔소리나 강박은 내게 좋은 영향을 준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전혀 받지 않았는데, 주변에 운동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덩달아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매일 아침 요가를 하고 일주일에 세 번 피트니스 게임(스쿼트나 플랭크를 해서 요괴를 물리치는 아주 건강한 게임이다)을 하며 땀을 흘리기로 다짐했다. 그 뒤로부터는 운동을 쉬면 죄책감이 든다. 계획을 완벽하게 지키진 못하지만 운동에 대한 다짐이 없었을 때보단 훨씬 더 몸을 자주 움직인다. “벌써 목요일인데 이번 주에 운동을 한 번도 안 했네? 저녁엔 링피트 꼭 해야겠다.” 이렇게 벼락치기라도 하니까 적어도 예전보단 건강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런 잔소리는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요즘 너무 상스러운 것만 봤어. 아름다운 것도 좀 보면서 살아야지.” 

자기 자신에게 바라는 게 많은 편이라 건강한 음식 먹기, 영어 공부하기, 돈 아끼기 등 온갖 잔소리를 달고 사는데, 아름다운 걸 챙겨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유행하는 건 아니지만 나의 정서에 좋은 것. 업무에 도움이 돼서, 나중을 위해 필요해서 쟁여두는 거 말고. 그냥 예뻐서, 귀여워서, 귀가 즐거워서 좋은 단순한 기쁨들도 비타민 챙겨 먹듯 챙겨야 할 때가 됐음을 느낀다.

 

코미디언 장도연 언니의 유행어처럼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이지만, 다행히도 생활엔 분명 틈이 생긴다. 캡슐 머신에서 커피가 나오는 틈에 노래를 한 곡 듣고(원래라면 인스타그램 돋보기를 보고 있었을 시간이다), 일하다 말고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본다. 나의 정서가, 나의 글이, 나의 인생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생활의 틈에 좋은 걸 채워 넣는다. “내 인생의 아름다움을 챙기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나밖에 없어.” 내게 정말 필요한 잔소리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신간 <달면 삼키고 쓰면 좀 뱉을게요>에 실린 글입니다. 매일 바쁘고 힘들겠지만 비타민 챙겨 먹듯 아름다운 것도 좀 보며 살 수 있기를. 응원 합니다. 해가 뜨면 산책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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