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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l 14. 2021

생일엔 동해 바다로 캠핑을 가기로 했다

나는 만족을 맛보기 직전, 딱 한 스푼이 모자란 상황을 못 견뎌한다.

지난 생일엔 동해 바다에 다녀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나들이였다. 가서 발이나 한 번 담그고, 해변에서 볕이나 좀 쬐다가 해지면 돌아와야지 싶었는데. 막상 바다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아, 너무 좋다. 이렇게 돌아가긴 좀 아쉽긴 해.”

“우리 차에 침낭이랑 텐트 다 있긴 한데. 심지어 간이 변기도 있어.”

“그럼 됐네! 그것만 있으면 일단 어떻게든 잘 수는 있잖아.”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았어. 짐 좀 제대로 챙겨올 걸.”

“왜 무계획 캠핑도 좋잖아. 모험하는 것 같고.”

우린 항상 이런 식이다.


당일치기 나들이가 즉흥 캠핑으로 바뀌는 사이 메신저에는 생일 축하 메시지가 쌓이고 있었다. 하나하나 확인하며 일일이 감동하는 나를 보고 김수현은 웃었다.

“생일이 그렇게 좋아?”

“응. 일 년에 생일이 두 번이었으면 좋겠어. 솔직히 한 번은 너무 하잖아.”

이제는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애정 결핍 문제를 수면 위로 건져 올리지 않지만, 언제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더 많은 애정에 대한 바람이 있다. 그런 나에게 생일이란 온 우주가 힘을 모아 애정을 충전해주는 아주 고마운 날이다. 하다못해 광고 문자마저도 나의 행복을 응원해주니까.

이상하게 기념일마다 싸우게 된다고 말하는 연인들이 종종 있는데. 우리는 기념일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아서 특별한 이벤트나 선물을 준비하지 않고 서로에게 실망할 일도 없다. 그러나 생일은 다르다. 자라면서 경험했던 생일은 언제나 델리만쥬 같았다. 냄새가 너무 달콤하고 향긋해서 한껏 기대를 해버렸는데, 막상 입에 넣으니 상상했던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친구들을 잔뜩 모아 거나한 생일 파티를 했을 때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애인과 맛있는 밥을 먹었을 때도 어쩐지 마음이 아쉬웠었다.


어느 해 우연한 계기로 캠핑장에서 생일을 맞은 적이 있었다. 주변에 가게랄 것도 없고 편의시설도 전무했다. 케이크는커녕 휴대폰 배터리 충전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조금 불편한 대신 인기가 없어서 캠핑장 전체를 전세 낸 것처럼 쓸 수 있었다. 그게 좋아 체크아웃 일정을 늦춰 하루 더 머물기로 했던 것이다. 꼬질꼬질한 채로 아이스박스에 남은 재료를 꺼내 먹으며(캠핑장에서는 ‘냉장고 파먹기’대신 ‘아이스박스 파먹기’를 한다) 느슨하게 보냈던 날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어서 오히려 기뻤다. 그 뒤로는 생일엔 가능하면 아무것도 기대 할 수 없는 상황에 나를 놓아둔다. 편의점 하나 없는 시골, 있는 거라곤 자연뿐인 장소에서 기대하지 않은 풍경을 만나며 기뻐한다.      


지난 생일 우리가 찾아간 해변은 이미 부지런한 서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나라에 서핑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모래사장에도 바다 속에도 기다란 서핑보드가 촘촘히 떠 있었다.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을 구경하는 일도 나쁘지 않지만 그 해변엔 내가 누울 자리가 없었다.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 아니다. 바다를 끼고 맛집과 전망 좋은 카페가 줄줄이 늘어선 화려한 바다. 물빛이 아름답고 고운 모래가 깔린 잘 관리된 바다. 항구가 있는 바다. 모래대신 바위가 둘러싼 바다. 다양한 ‘바다 경험’을 통해 어떤 바다에서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의 취향에 맞는지 알게 됐다. 나는 붐비지 않는 한적한 모래사장에 누워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맛집이나 카페가 없어도, 관리가 되지 않아 조금 어수선해도, 크기가 작아도 괜찮다. 보통,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해변을 지나쳐 5분 정도만 더 달리면 인기 없는 해변이 나타난다. 그날 우리 앞에도 어김없이 인기 없는 해변이 나타났다. 낚시꾼 두 세팀 뿐인 조용한 바다. 모래를 뚫고 살아남은 잡초가 듬성듬성 나있는. 물 한 병 살 곳 없는 야생의 바다. 같은 장소라도 찾아간 장소와 나타난 장소는 왜 느낌이 다를까. 어떻게 우리 취향에 맞는 바다가 우연히 딱 나타나지? 기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플러스 30점. 성수기 주말 동해에 마지막 남은 한적한 해변이라는 점에서 추가 점수 70점. 100점짜리 바다를 만났으니 별 수 있나.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갈래.”      


캠핑을 하며 아쉬움을 견디는 연습을 한다. 평소의 나는 만족을 맛보기 직전, 딱 한 스푼이 모자란 상황을 못 견뎌한다. 새벽에 떡볶이를 먹는데 계란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지나치지 못하고 어떻게든 계란 파는 곳을 찾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9를 가지고도 부족한 1을 곱씹으며 아쉬워하는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랄까.

그런데 캠핑은 아쉬움이 디폴트인 세계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를 해가도 빠뜨리고 온 물건이 한 두 개쯤 생기고, 호텔 급이라 칭찬받는 캠핑장이 별점 1개 반의 펜션보다 불편하다. 맥주가 시원하면 좋겠지. 하지만 어쩌겠어 여긴 냉장고가 없는데. 미지근한 맥주로 만족하는 수밖에.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공감각적인 순간을 음악 없이 지나쳤을 때의 아쉬움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노을, 바다, 맥주가 있는데 음악이 없다니!)     


휴대폰 배터리 잔량은 44퍼센트. 오늘 여기서 자고 가기로 결정한 우리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구해보기로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없어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것과 없으면 절대 안 되는 것을 가르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는 해변에 남아 우리의 짐을 지키고 김수현이 차를 몰아 필요한 물건을 구해오기로 했는데,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재료를 구해왔다.


“칫솔이랑 치약 없었어? 썬크림은?”

“아! 있었을 걸? 근데 그게 꼭 필요한 거였어?”

걔가 쥐고 있는 비닐봉투 안에는 소떡소떡과 옥수수 술빵 그리고 떡볶이가 들어 있었다. 어쨌거나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긴 해서 웃음이 났다.      


유월의 햇살을 썬크림도 없이 온몸으로 받아낸 탓에 예민한 내 피부는 검붉게 익어버렸는데, 덕분에 한동안은 옷깃만 스쳐도 쓰라릴 만큼 아팠다. 차가운 알로에 젤을 치덕치덕 바르면서 나는 바보처럼 또 웃었다. 그날 참 좋았지.

이름도 낭만적인 ‘햇빛 화상’을 입은 내 피부는 아직도 회복중이라 피부만 보면 매일 파도 타는 서퍼 같다. 기껏해야 이틀이었는데 이렇게 타버릴게 뭐람. 그러나 곧 계절이 바뀔테고 탄 피부는 서서히 제 색을 찾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내 바다에서 보낸 생일을 그리워하겠지. 어쩌면 그새를 참지 못하고 또 대책 없는 캠핑을 감행할지도 모른다. 칫솔도 치약도 썬크림도 없는. 아…. 아무래도 썬크림은 있어야겠다. 생존에 꼭 필요한 물건만 넣은 모험 키트를 만들어 언제든 외박할 수 있도록 차에 넣어놔야지. 다른 건 몰라도 썬크림은 꼭 챙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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