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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05. 2023

“넌 의식주 중에 뭐가 가장 중요해?”

남들 눈에는 별거 아닌 문젠데 나 혼자 엄청 신경 쓰는 거 있잖아

“넌 의식주 중에 뭐가 가장 중요해?”

다 가질 순 없다.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말해 준다. 한동안 이 질문에 꽂혀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물었었는데(주기적으로 꽂히는 질문이 있는 편). Y는 고민 없이 ‘식’이라고 했다. “나는 끼니를 때우듯이 대충 먹으면 기분이 안 좋아. 그래서 김밥도 별로 안 좋아해.” 너무 바빠서 불만족스러운 식사를 계속하게 되는 시즌이 되면 인생을 잘 못 살고 있는 느낌까지 든다고 했다. 실제로 Y는 ‘식’에 진심인 사람으로 가을이 되면 밤 조림을 잔뜩 만들어서 나누어 주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맛있는 걸 해 먹이길 즐긴다.


나의 경우 ‘의’가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옷차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늦잠을 자서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옷을 주워 입고 나간 날엔 종일 기분이 별로다. 반대로 옷차림이 마음에 드는 날엔 (과장 좀 보태서) 나라는 사람이 괜히 좋아진다. 내게 잘 어울리는 예쁜 옷을 입으면 뭐든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어도, 약속이 없는 날에도 가능한 ‘잘’ 챙겨 입으려고 노력한다. 대단한 멋쟁이는 아니지만 옷에 있어서 까다로운 편이고. 인생에서 ‘멋진 옷을 입는 즐거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100퍼센트의 옷을 찾기 위해 꽤나 많은 정성을 쏟는다.  

“그러니까 내가 제철 음식 챙겨 먹는 게 중요한 것처럼. 너는 제철 옷 챙겨 입는 게 중요한 거네.”

“그치. 철마다 예쁜 옷 사서 입힐 때 스스로를 대접해 주고 있다고 느껴. 그나저나 가을 지나가기 전에 가죽 자켓 많이 입어야 하는데.”

“나는 가을 무화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우리 참 다르다. 재밌어.”



언젠가 홍대에서 D를 만났는데, 그날 입고 나간 티셔츠 핏이 묘하게 마음에 안 들어서 혼자 속으로 시무룩해하고 있었다(분명 작년에는 좋다고 입던 옷인데 왜 올해 다시 입으니 별로인 걸까) D는 나의 저기압을 금방 눈치챘다.

“우니 오늘 왜 컨디션이 별로야?”

남들이 들으면 ‘꼴값’이라고 하겠지만 D에게는 뭐든 말할 수 있다.

“티셔츠 핏이 마음에 안 들어. 아무도 오늘 입은 티셔츠 핏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모를거고 애초에 관심조차 없겠지만.”

“오 나도 그런 포인트 있어. 남들 눈에는 별거 아닌 문젠데 나 혼자 엄청 신경 쓰는 거. 그렇게 티는 안 나는데 혼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쌓여서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나는 이래서 D를 좋아한다. 똑똑한데 다정하고. 다정하지만 정확해.      


어떤 사람들에게 ‘인생 노잼’ 시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처럼, 나에게는 ‘입을 옷이 없는’ 시기가 종종 돌아온다. 옷방 가득 옷이 걸려 있지만 뭘 입어도 만족스럽지가 않을 때. 한남동의 편집숍이란 편집숍을 다 돌아다녀도 마음에 드는 옷을 찾을 수 없을 때. 침대에 누워 두 시간째 패션 플랫폼을 뒤지고 있는데 장바구니에 스커트 하나 못 담고 있을 때. 이것이 무의식이 보내는 위험 신호임을 이젠 경험으로 안다.

“요즘 왜 이렇게 예쁜 옷이 없지? W컨셉 봐도 다 그게 그거야.”

“우니 요즘 우울하구나. 우니 원래 우울하면 그런 이야기 자주 하잖아.”

어떨 때 보면 D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실은 옷이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내 인생이 마음에 안 드는 상태인 거다. 그다음 순서는 쇼핑할 의욕조차 사라지는 ‘무기력 스테이지’가 될 것이다. 행복으로부터 더 멀어지기 전에 뭐든 찾아야 한다.




오늘의 스몰 토크 주제

“넌 의식주 중에 뭐가 가장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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