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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19. 2023

내가 흉내 내고 싶은 다정함들

“팀장님은 추구미가 뭐예요?”

“팀장님은 추구미가 뭐예요?”

“음… 생각 안 해봤는데. 지금부터 해 볼게. 평소에는 허술하고 귀여운데 본업 할 땐 천재인 사람?”

“오. 느낌 있는데요? 다들 그런 거 없다고 하지만 막상 물어보면 각자 나름 추구미를 가지고 사는 게 재밌더라고요. 더 말해봐요.”

“아! 또 있다. 여유 있고 느긋하고 다정한데 센스 있는 사람. 아무 날도 아닌데 만날 때마다 작은 선물 같은 거 챙겨 오는 사람 있잖아.”

“뭔지 알아요! 그 선물 안에 직접 쓴 엽서나 편지 같은 거 들어 있어서 감동시키고. 문상훈이 좀 그렇지 않아요?”

“맞아. 하지만 현실은 추구미와 거리가 아주 멀지. 퇴근 못 해서 약속 시간 늦고. 약속 파토 내서 절교당할 뻔하고. 흐흐.”


요즘 10대 20대가 많이 쓰는 표현 중에 ‘추구미’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미(美)’를 가리키는 말로 ‘내가 원하는 이미지’라는 뜻이다. 넓게 보면 롤모델과 비슷한 뜻인데, 특정 인물이 아니라 콘셉트를 정해 놓고 그에 맞는 레퍼런스를 수집해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 재밌다. 좌우명이나 커리어같이 거창한 무언가는 당장 따라 하기 어렵지만, 생활 습관처럼 작은 행동은 쉽게 따라 해 볼 수 있으니 좀 더 실용적이랄까. 이를테면 강민경님 브이로그를 보고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는 조합 찾아서 예쁘게 차려 먹는 거 너무 좋아 보인다.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 결심한다든가. 자기는 헬스장에 일부러 비싸고 향 좋은 바디워시를 사다 놓는다고. 그래야 ‘헬스장 가서 샤워라도 해야지’라는 동기 부여가 생긴다고 말하는 운동 유튜버를 보면서 “오 좋은데? 나도 써먹어 봐야지.” 생각하는 식이다.        


               


며칠 전에 갑자기 추워졌던 어느 날 코끝이 언 채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가 커피 냄새가 섞인 따듯한 공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아 그 시즌이 왔구나.’

악마가 “겨울을 없애줄 테니 네 인생의 4분의 1 반납할래?”라고 물으면 고민 없이 승낙할 만큼 겨울을 싫어하지만. 연말의 겨울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음’이 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스타벅스에서 흘러나오는 캐롤과 크리스마스트리에는 깍쟁이도 산타로 만드는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매해 이 시즌이 되면 나는 어설프게 다정함을 흉내 내곤 한다. 작은 선물을 사서 포장하고 크리스마스카드를 쓰면서 연말 기분을 내는 것이다.

늘 예상치 못한 작은 선물을 안겨주는 산타 같은 사람. 마음이 담긴 편지를 쓸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다정한 사람.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그럴만한 그릇이 안 되는 탓에 인생의 대부분을 레퍼런스만 모으며 지내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은 메모장에 모아둔 내가 흉내 내고 싶은 다정함들. 따뜻하고 훈훈한 시즌을 맞아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몇 가지 옮겨 적었다.  


유튜브에서 봤는데 최화정님은 마음에 드는 생활용품(집게, 숟가락, 병따개, 포크 뭐 이런 것들!)을 발견하면 여러 개를 사서 쟁여 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오면 하나씩 나누어 준다고. 주인이 없는 선물을 미리 사두는 여유라니. 반했다. 선물을 급하게 사는 경향이 있는 내가 따라 해 보면 좋을 습관이군. (급하게 산 선물은 당연하게도 매번 실패다. 재미도 감동도 주지 못한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때 눈사람 키링 열 개 사서 쟁여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눠 줘야지.


얼마 전에 배달의 민족 이동진 이사의 강연을 들었다. 청중들을 위한 작은 선물들을 바리바리 챙겨 오셔서 귀엽다고 생각했다. 가져온 선물을 소개하면서 본인은 좋은 책을 발견하면 절판되기 전에 미리 여러 권 사두고 주변에 선물한다고 말했는데 인상 깊었다. 나도 책 선물을 꽤 자주 하는 편이다. 주로 혼자 여행을 가는 친구, 병원에 입원하거나 오랫동안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친구에게 선물한다.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저런 상황이 되면 책이 필요해지니까. 누가 책 추천해달라고 하면 카카오톡 선물하기나 쿠팡에서 골라서 깜짝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청첩장 모임에 참석할 때 준비물로 꽃을 사 가는 친구가 있다. 그런 모임엔 ‘밥이나 얻어먹고 오는 거지 뭐.’라는 식의 관성적인 태도로 임했었는데 반성했다. 나도 꽃 한 송이를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친하진 않은 타팀 회사 후배가 해외여행을 갔는데 내 생각이 났다며 편지를 써 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 편지 덕분에 일주일이 행복했다. 종종 여행지에서 내 책을 읽고 편지를 써서 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책에 대한 답장을 받은 기분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두고두고 꺼내 읽는다). 나도 한때 여행 루틴 중 하나가 소품샵에서 엽서 사서 편지 쓰기였는데. 사실 편지가 가장 잘 써지는 타이밍은 여행 중일 때이긴 하다. 다음 여행에는 나도 의외의 인물에게 편지를 써 볼까.       



오늘의 스몰 토크 주제

센스 있는 선물을 고르는 나만의 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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