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아무 약속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이 무한한 사람처럼 산다.
내일도 오늘처럼 올 거라 믿고, 다음 달도, 내년도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부터 미룬다.
말 한마디, 안아주는 일, 고마웠다는 표현,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선택들까지.
하지만 시간은 늘 조용히 줄어든다.
알림도 없고, 예고도 없다.
어제와 오늘의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이미 많은 장면들이 과거형이 되어 있다.
나는 아주 일찍 그 사실을 배웠다.
어린 나이에 마주한 부재는
시간이 결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종종 하루를
‘오늘만 허락된 여행’처럼 살아보려 애쓴다.
시간은 돈보다 먼저 사라진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오늘 아이의 웃음, 지금의 체력, 이 나이의 감정은
다시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돈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달라졌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시간을 지켜주는 도구가 되었다.
잘 산다는 건
더 많은 걸 갖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순간에 제대로 머무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질문 앞에서 휴대폰을 내려놓는 시간,
아내의 하루를 끝까지 들어주는 저녁,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 선택들.
우리는 모두 유한하다.
그 사실을 외면할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마주할수록 삶은 단단해진다.
유한함을 아는 사람만이
오늘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성공보다 방향을,
속도보다 밀도를,
미래보다 지금을 놓치지 않겠다고.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을 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오늘 하루만큼은
시간을 쓰지 않고,
시간과 함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