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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희 Jul 11. 2018

마라톤은 승리를 전하는 달리기가 아니다

마라톤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알 때가 됐지

42.195km

마라톤은 육상 경기의 한 종목으로, 42.195km의 거리를 달리는 도로 경주이다. - 위키백과

                       



길고, 끈질기고, 지루하다가, 감탄스럽다가 결국에는 감동적인 운동 경기, 마라톤.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화면의 일정 구간을 반복 재생 시켜 놓은 듯이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 신체 능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시작 된 고대 그리스 올림픽의 정신을 제대로 보여주는 경기는 바로 마라톤이 아닐까 싶다.



어째서 42.195km를 달리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페르시아 vs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의 첫 번째 전투였던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가 승리를 거둔 뒤,

아테네인 필리피데스가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42.195km를 달려가 승전보를 전하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후대에 만들어진, 실제 역사와 전혀 다른 이 이야기가 더 퍼지기 전에 진짜 마라톤의 유래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40km 정도 이동하면 마라쏘나스 평원이다.

흔히 마라톤 평원이라고 부르며, 마라톤 전투가 있었던 바로 그 평원이다.

현재도 저 곳에는 마라톤 전투 기념박물관과 전사자들의 무덤과 비가 세워져 있다.



마라톤 전투는 기원 전 5세기에 약 50년에 걸쳐 일어난 페르시아 vs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의 첫 번째 전투였다. (그리스가 이겼는데 왜 페르시아 전쟁인지는 모를 일)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제국이었고, 그리스는 통일 된 한 나라도 아니고 수 많은 도시 국가들의 연합체였다. 그리스라는 공동체 의식은 있었으나, 도시 국가들끼리 경쟁이나 전쟁도 잦았었다.

페르시아는 제국이었고, 그리스는 도시 국가들의 모임이었다. 그리고 이 도시 국가들을 모두 모아봤댔자, 지금 우리 한반도 땅크기만큼도 안 된다.



즉,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쳐들어오는 건 제국의 정복 전쟁에 가까웠다. 페르시아 입장에서 그리스는

 "저 촌놈들이 뭘 모르는구나"

로 보이기도 했고, 기원 전 5세기 페르시아는 자신들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의 빛으로 세상이 만들어지고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근데 동시대에 그리스 사람들은 세상은 물,불,흙,공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 때가 그리스 철학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페르시아인들이 보면 그리스인들이 얼마나 황당했을것인가.


세상이 물,불, 흙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페르시아 제국이 볼 때, 그리스 놈들은 이상한 놈들이었다.

세상이 물로 이루어져있다는 소리나 해대고 있고, 저 작은 땅덩어리를 누구하나가 통일하지도 않고 조각조각 나누어 가지고 있는데다가, 저마다 가지고 있는 통치 형태도, 법도 전부 다 다르니 제국의 입장에서는 참 독특한 땅이었다 그리스는.

그러니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전쟁일 수도 있겠다.



이는 인류 역사 최초로 동양과 서양이 맞붙은 전쟁이었으며,
이 때 그리스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서구라는 실체가 탄생했다.


이 페르시아 전쟁의 첫 번째 전투가 바로 마라톤 전투 되시겠다.







페르시아는 왜 아테네가 아니라 마라톤 평원으로 갔을까?

아테네로 바로 쳐들어가도 됐을텐데?


이유는 단순하다. 페르시아는 피를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전쟁인데, 굳이 칼 들고 싸울 필요 없었다. 아테네에게 페르시아의 함대가 어느 정도의 위용인지 보여주면 아테네는 알아서 항복 사절을 보낼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었냐면, 페르시아가 가져온 함대 중 한 척은 고급 대리석으로 가득 차있었다.


Q. 전쟁하는데 대리석을 왜 가져오냐고?
A. 승리하면 마라톤 평원에 승전비를 세우려고.


이처럼 페르시아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으며, 페르시아는 승리해서 어떤 비를 세우고 올 것인지 디자인까지 끝내고 대리석까지 싣고 마라톤 평원으로 들어왔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땅 크기



페르시아가 마라쏘나스 평원에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테네인들은 고민에 빠졌다.

"항복할 것인가? 나가서 싸울 것인가?"


나가서 싸울 것인지, 항복을 할 것인지 아테네 장군들이 모여 결정하는 과정이 재밌다.

아테네 장군들은 대부분 항복 사절을 보내자 혹은 대화로 해결하자 쪽이었다.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한 명이었다. 마라톤 전투를 이끈 장군, 밀티아데스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 식민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페르시아 소속 장군으로 일했던 그리스인이다. 주변에 페르시아 식민 지배를 받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려다가 들켜서 아테네로 도망 온 남자다. 아테네는 이 돌아온 탕아를 죽여버릴까 하다가 "페르시아의 전술을 깊숙히 알고 있는 남자"로, 과감히 장군으로 선출한 것이다.




 지금 아테네에서 밀티아데스만큼 페르시아 군대를 잘 아는자가 있는가?
밀티아데스 청동상


아테네 장군들의 회의 결과가 대화, 항복 쪽으로 거의 기울어졌다.

밀티아데스는 깊은 새벽, 은밀하게 최고 장군의 막사로 찾아간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테네가 그리스에서 가장 먼저 굴복하는 나라가 될지,
그리스 최고의 도시 국가가 될 지는 당신의 결정에 달렸소.



크으, 대사봐라!

최고 결정권을 가진 장군님, 이 말을 듣고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아테네 군대는 청동 갑옷과 칼을 챙겨들고 마라톤 평원으로 진군해갔다.






전쟁의 양상은 거두절미하고 결과를 말하자면, 아테네의 대승이었다.

파란색이 아테네, 주황색이 페르시아


마라톤 평원은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내리막이다. 아테네인들이 청동 갑옷과 방패로 눈만 배꼼히 내놓은 채,

헛둘헛둘 페르시아를 향해 걸어갔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페르시아는 "쟤네가 지금 뭐하는것이여?"

그렇게 헛둘헛둘 페르시아 쪽으로 다가가던 아테네는, 페르시아와 아테네 진영의 거리가 약 10m로 좁혀졌을 때, 갑자기 미친놈들처럼 사자후를 지르며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페르시아 겁나 깜짝 놀라게.



그리고 최정예 부대를 중앙에 두는 페르시아의 전술과는 반대로, 그리스는 최정예 부대를 양 날개에 배치했다.

자연스럽게 그리스의 중앙은 뒤로 밀렸고,  양 날개는 앞으로 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스의 날개가 페르시아의 중앙을 포위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페르시아는 포위됐다!




당황한 페르시아는 바다에 떠있는 페르시아 함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웬일이야, 뒷 쪽은 늪이었다. 발이 푹푹 빠져 도망도 제대로 못 쳤다. 이 때부터 가히 아테네의 페르시아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최종 결과, 아테네쪽 전사자 192명, 페르시아쪽 전사자 6400명.

아테네의 대승이였다. 페르시아는 배를 타고 패주했고, 아테네 전사들은 환호했다.







마라톤 평원에서 대승을 거둔 아테네인들이 막 기뻐하고 있을 무렵,

아테네 한 병사가 저 먼 산에서 번쩍하는 빛을 발견한다. 반짝반짝반짝

저거 뭔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데....뭐지....뭐지....?................!!!!!



페르시아는 패주하는 게 아니다. 우리 도시 아테네로 가고있다!



큰일이 났다. 아테네에 힘 쓰는 남자들은 죄다 마라톤 평원으로 나왔다.

지금 아테네에서는 부모와, 아내, 아이들이 남편과 자식,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페르시아 함대가 아테네로 향하고 있다!



아테네 병사들은 아테네를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때는 8월, 그리스의 8월 평균 온도 약 40도, 군장의 평균 무게 약 30kg,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는 약 40km.
30kg의 군장을 메고, 40도에서 며칠동안 전쟁을 치뤄낸 남자들이 다시 아테네로 전력 질주했다.
무슨일이 있어도 페르시아보다 먼저 아테네에 도착해야 했다.



오전 10시경 마라톤 평원에서 달리기 시작한 아테네 병사들은 오후 늦게 아테네에 도착했다. 간발의 차이로, 페르시아 함대보다 먼저였다.

페르시아는 경악했다. 거기서 여기까지 함대보다 빠르게 달려왔다고?


페르시아 전쟁사, 톰 홀랜드.



페르시아는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함대를 끌고 페르시아로 돌아갔다.

(이 정도 미친 전투력을 보여주는데 싸울 엄두가...)

진짜 아테네의 대승이었다.


이 때, 아테네 병사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40도의 폭염 속에서 30kg의 청동 군장을 메고 다같이 달렸던,

마라톤 평원에서부터 아테네까지의 거리 약 40km 가 지금 우리가 뛰는 마라톤 경기의 기원이다.



나중에 만들어진 저 낭설보다 실제 역사가 훨씬 감동적이지 않은가?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가 거둔 승리는 서구라는 실체가 태어나면서 낸 울음 소리라고 평가 받는다.


만약 이 때 아테네가 싸우기를 포기했거나 전쟁에서 패했더라면?

페르시아는 유럽땅으로 밀고 들어왔을거고, 지금 우리는 동양 문명 아래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가 거둔 승리를 시작으로 결국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를 거둔 것은

페르시아가 유럽땅으로 들어온 것을 저지한 것, 동양과 서양이 맞붙은 최초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고 서구라는 실체를 탄생 시킨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는 지금까지도 서양의 어머니, 서구 문명의 뿌리 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1981년 그리스가 열 번째 회원국으로 유럽 공동체 (European Community, EC) 에 가입했을 때,

영국 외무장관은,


" 유럽은 삼천년 전부터 그리스 문화 유산에 빚을 지고 있는데,

이제야 그 빚을 갚게 되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스가 서구 문명의 토대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리피데스는 누구?


필리피데스는 페르시아가 아테네쪽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있은 뒤,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사절이다. 그러니 필리피데스가 달린 것은 아테네에서 스파르타까지 약 220km이다.

엄청 달렸다. 아테네가 지원군을 요청하자 스파르타의 대답은 "지금 우리 성스러운 제사 기간이니 제사가 끝나고 약 10일뒤에 군대를 보낼게" 였고, 이는 사실 안 보내겠다는 말이다. 10일 뒤면 이미 상황 종료됐을텐데


정말로 10일 쯤 뒤에 스파르타는 어기적어기적 아테네로 등장했고, 아테네는 그저 마라톤 평원쪽으로 가봐 라고 할 뿐. 가보니 산더미처럼 쌓인 페르시아인 6400명의 시체와 엄청난 양의 청동 무기들.

스파르타야, 우리가 질 줄 알았지?



아크로폴리스 위에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 동쪽
파르테논의 동쪽과 북쪽
이 와중에 하늘 봐라 에구그리워라
파르테논을 본뜬 유네스코 마크, 파르테논은 계단이 세개인게 뽀인트 중에 하나



페르시아 전쟁 승리 이후로, 아테네는 본격적으로 아고라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부흥시켰고,

아테네 중앙 아크로폴리스 위에  당대 최고의 건축물 파르테논을 건설하며 아테네가 그리스 최강의 도시국가임을 확고히 했다. 바야흐로 아테네의 황금기였다.

(파르테논 안쪽에는 마라톤 전투 전사자 192명이 조각되어 있다.)

파르테논은 당대 아테네의 문화, 건축, 기술, 과학, 철학을 모두 담은 완벽한 그릇으로, 지어진 지 2,500년이 지났는데도, 심지어 중간에 폭탄 맞아 터졌는데도 저 정도로 서 있는 지금의 건축물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최고의 신전이다.



이 때 아테네인들이 건설한 파르테논은 서양 최고의 건축으로 지금도 아테네 중앙에 우뚝하다.







마라톤은 한 사람이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뛴 것이 아니라,

아테네 전사들 전체가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뛰었던 거리다.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약 40km.







+ 추가로 42.195km 라는 요상한 숫자는, 런던 올림픽때부터다. 영국 여왕님이 자기 사는 궁 돌아가는 걸로

마라톤 코스 조정한 이후로 42.195km 라는 애매한 거리를 달리게 되었다.



++추가 하나 더, 페르시아의 후예는 현재의 이란이다. 이란은 마라톤 경기 참가를 국가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의 입장에서는 우리 조상님들 대패한 역사를 기리는 경기니 그럴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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