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는 아름다운 책이다.
진심을 말하는 문장은 단순하고, 진심 속에 선하고 우아한 마음이 가득하다. 선하고 우아한 마음이 담긴 문장들이 단순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아주 단순한 문장들 속에 사랑이 가득했다. 이렇게 흔하고 평범한 말이 진리라는 것은 언제나 놀랍다.
한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자를 사랑했다. 내 사랑 선자야, 나의 아름다운 선자야 라는 말을 보석처럼 간직한 채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자주 말했다. 하지만 한수를 만나 고통스러운 삶 속으로 들어선 선자는 다시는 사랑스러운 여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숨죽여 한수를 사랑했다. 그래도 선자는 이런 삶을 살 수 있음에 감사했고, 오래도록 한수를 사랑했고, 그녀의 아들들 노아와 모자수는 그녀 인생의 전부였다.
선자 인생의 한쪽이었던 노아는 자살했다. 노아의 아버지, 한수의 삶 전반에 깔려있던 폭력과 야만성이 노아의 꿈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노아의 꿈에는 바른 아버지를 따라 살아가는 노아, 선량한 아버지의 그늘 속에서 편안한 노아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노아가 하려고 했던 훌륭한 일들은 모두 아버지의 크고 바른 시선 속에서 하기를 바랬던 것들이었다.
선자 인생의 한쪽인 노아가 그렇게 죽었어도, 그래도 선자의 순례길은 계속되었다. 선자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삶이 어떤 고통을 주어도 선자는 그저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 죽고 싶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용기를 내야하는 순간에 용기를 내고 사랑을 잃지 않았다.
순례길 같은 인생 속에서도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의 숭고함, 죽음을 몇 초 앞두고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눈들을 하나하나 맞추며, 가벼운 미소와 함께 눈감을 수 있는 생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쓸쓸하고 아름다운 답을 상상했던 책이었다.
파친코의 첫 문장,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선자의 삶은 역사가 크게 흔들었지만 선자를 망쳐놓지 못했다. 모든 슬픔과 고통은 개별적이고 아무리 역사여도 개인의 고통에 접근할 수 없단 걸, 선자는 튼튼한 마음으로 알고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이 어떻게 되어도 쓸쓸하다는 것을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 죽음을 몇 초 앞두고서야 쓸쓸하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