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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디아워스

소년이 온다

독후감

by 우엥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양심을 위해 목숨을 내던졌던 시대의 이야기를 읽는다. 총에 맞아 길에 쓰러진 사람들, 흰 가운에 피를 묻히고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의사들, 헌혈을 하려고 끝도 없이 줄을 선 시민들.

나의 피부와 당신의 상처가 맞닿고, 우리의 정맥이 연결되고, 피가 흐르던 상처가 아물고 심장이 다시 뛰던 순간, 모든 것이 정화되고 완전히 순결한 세상의 심장을 목도한 것 같았던 순간의 이야기를 읽는다. 가장 폭력적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슴 속에 빛나던 사랑,양심, 연대의 이야기.


북한의 공산주의는 인민들이 직접 광장에 나가 피를 흘려 쟁취한 것이 아니라 옆 나라가 투쟁해 이룬것을 책으로 배워와 흉내낸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던 말이 떠올랐다. 인민의 심장이 하나로 뭉쳐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세상이 먹을 것도 부족했던 시절보다 팍팍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 정신의 핵심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존엄한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존엄하다는 말조차 곧 사라져버릴 것 같다. 표현할 언어가 없으면 마음은 유지될 수 없는데 어쩌면 좋지


얇은막처럼 위태롭게 존재하는 내면에 작은 생채기도 내지 못할 빈약한 구원의 말들이 사람들의 정신에 사기를 친다. 우리는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신의 핵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슬플 것이다. 나 하나만 탈 수 있는 뗏목에 앉아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될 것이다. 환각 같은 육지를 꿈꾸다가 또 저주하면서. 꿈꾸는 말은 잊어버렸고 저주의 언어가 달달 들리는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난 우리가 직접 피를 흘려 쟁취한 무결에 가깝게 순결했던 어떤 것이, 언제 그런게 있었냐는 듯 사라져가는 시대를 살고있다.


한줄한줄 읽기도 괴로운 폭력적인 이야기들 속에 사랑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새로 알게 된 단어들은 모두 죽음,폭력,슬픔에 관한 단어들이었는데, 이런 이야기 안에 큰 사랑이 있다. 그래서 내가 사는 세상에 사랑의 언어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내가 빠르고 재밌는 이야기를 즐기는 사이 내 안의 무언가를 빼앗기고 있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혼자 있는 시간, 내 손바닥을 펼치면 남아있는 것은 작고 힘없는 소망이었는데, 죽어가던 소망에 힘을 불어넣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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