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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디아워스

아름답지 않은 삶

by 우엥

김명자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다. 그녀의 정확한 나이는 누구도 알지 못하나, 6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외모다. 그녀는 포구에 자리한 동태찌개 식당으로 아르바이트를 다니며 생계비를 번다. 나이가 많아 어디서도 고정 직원으로는 고용해주지 않으므로, 이곳이 그녀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일만 시켜준다면 어디든 가서 일할 그녀이지만, 그녀에게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곳은 이곳뿐이다.

식당에서 그녀가 하는일은 뚝배기를 닦는 일, 꽝꽝 언 동태들을 칼로 내리쳐 찌개를 끓일 수 있도록 다듬는 일이다. 그녀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 일에 몰입한다. 뚝배기를 닦을 때, 왼손에는 뚝배기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수세미를 들고 수세미가 전동 드릴이라도 되는 것처럼 뚝배기 안쪽을 수세미로 윙윙윙 빠른 속도로 돌려 닦고 개수대 저쪽편으로 내려놓는다. 뚝배기를 닦는게 오른손이 아니라 전동팔인 것 같다. 수세미를 돌리는 속도, 회전각, 돌리는 횟수까지 동일하다. 그녀는 그렇게 무섭게 집중하며 뚝배기를 닦는다. 동태를 다듬을 때도 마찬가지다. 너무 꽝꽝 얼어 바닥에 내리쳐도 꽝꽝 소리가 나는 동태를 집어다 도마위에 놓고는 무시무시한 칼로 망설임 없이 내리쳐서 동태의 머리와 몸통을 동강낸다. 저러다 자기 손인지도 모르고 칼로 내리치는 건 아닐까, 그리고 자기 손이 동간난 줄도 모르고 또 다른 동태를 집으러 동강난 손을 옮기지 않을까 상상하게 만드는 눈빛으로 동태에 칼을 내리친다. 그녀의 노동은 단순하고 무지막지해서,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저 작은 여인이 어찌 저런일을 하나요 하고 눈물을 훔칠지도 모른다. 삶이 무엇인지 아는자가 본다면 그 단순하고 무서운 노동이 그녀의 생명력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걸 알 것이다. 노동이 끝나고, 혹은 노동이 없는 시간에 그녀 눈에서 광채를 앗아가는 것은 공허다. 누구도 그녀를 봐주지 않아 허공 속에 사는 그녀를 잠시나마 단단한 땅에 붙들어 주는 것이 노동이다.


그녀가 출근하면 직원들이 점심은 먹었는지 묻는다. 그녀는 오는 길에 아는 사람 만나서 고기 먹고 왔다고 대답한다. 언제나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이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오는 길에 아는 사람 만나서 고기 먹고 왔다고 대답한다. 모두는 알고 있다. 그녀에게는 아는 사람도 없고, 고기를 사먹는 일도 없다는 걸. 그리하여 사람들은 대답을 들으나마나 밥상을 차려준다. 응 고기먹고왔구나 여기앉아 같이밥먹어

아는 사람만나 고기 먹고 온 그녀는 차려준 밥상을 마다하지 않고 앉아서 한그릇을 제일 빨리 식욕있게 먹어치운다. 고기 먹고 왔다면서 왜 이렇게 많이 먹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왜 고기 먹고 왔다고 거짓말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다. 고기를 먹고 왔으니 밥은 안 먹어도 되겠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오는 길에 아는 사람 만나서 고기 먹고 왔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의 꿈속 임을 모두 알고 있다. 그녀의 꿈을 깨려고 따져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꿈을 현실처럼 말하고, 그것을 응 그렇구나 하고 들어주는 사람과 밥을 먹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무지막지한 노동을 하며 여태껏 부유해왔던 허공을 망각한다.


명자에게는 어린 시절과 아가씨 시절이 없었을 것만 같다.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로 태어나 쭉 일하는 할머니로 살아온 것 같은 고정감이 있다. 아마 명자 자신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잊었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녀를 보고 그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그녀가 언제 어디서 자신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평생토록 자기 자신이란 걸 손에 쥐어본 적도 없었을 수도 있다. 그녀는 그저 일을 하고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허공을 부유하며, 허공 속에서 꾸는 꿈의 내용을 말하고 다니는 것으로 꿈을 이룬다. 길을 걷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배부르게 고기를 먹는 것, 그녀가 꾸는 꿈은 이런 것이다.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자식들이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줄기차게 말하고 다니는 지 모르겠으나,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있고, 그 아름답지 않은 삶이 나의 삶일 수도 있다. 명자의 삶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상종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진정한 사랑의 경험 없이 그저그런 마음만을 가진 사람으로 죽을 수도 있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남의 말과 인생만 따라하고 살다가 죽을 수도 있다. 나의 죽음에 어떤 시선도 연민도 없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살아있는 내 생애에 어떤 시선도 없을 수도 있다. 삶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고, 견뎌지는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인내나 고상한 인격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냥 살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명자씨의 삶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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