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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디아워스

목에 점 없는 사람

오늘부터

by 우엥

오늘은 연초에 결재했던 피부과 기미 레이저 10회 패키지의 마지막 시술을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10회니까 두어달이면 다하겠지 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가는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아서 4월이 되어서야 다 받았다.

기미가 세달 전보다 옅어졌나 거울을 보는데, 기미 같은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그냥 피부가 엄청 안 좋아보였다. 아침에 세수할 때 거울 보면 피부가 나쁘지 않은데 피부과에서 보면 꼭 현미경으로 확대해놓은 것처럼 피부가 징그럽게 보인다. 피부과는 일부러 그런 조명을 쓰는걸까? 피부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런 조명


10회 레이저 시술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시술 때 서비스로 해줬던 점 제거 였다. 내 외모의 큰 특징 중 하나였던 목 한가운데 있는 큰 점을 뺐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즈음에 생긴점인데, 정말 목의 가로세로 정중앙에 딱 생긴점이었다. 라떼는 목에 점이 없으면 귀신이다라는 믿음이 있었어서, 나는 인간임을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증명했던 점이었다. 더 커서도 친구들이 띵동띵동 소리를 내며 목에 있는 점을 초인종처럼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놀리던, 친근하고 귀여운 이야기가 많던 점이었는데 이렇게 느닷없이 없어져버렸다.

어디 점을 뺄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의사선생님이 목에 있는 점도 없앨 수 있습니다 라고 해서,

네? 이걸요? 놀라서 물었더니, 아끼는 점이시면 안 빼셔도 된다길래 아니 뭐 아끼는 점은 아닌데...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내 목에 있는 점은 어떤 기계로 조져져서 사라졌다. 유서 깊은 나의 목점이 이렇게 손쉽게 사라지다니. 겪을 때마다 느끼지만 큰 일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갑자기, 이런말은 사실 없는거다. 그냥 일이 일어나는 거다. 그냥 그 일이 일어났으므로 나는 앞으로 목에 점 없는 사람으로 남은 인생을 살게 된다. 개뿔 아무런 변화도 없겠지?

목에 점 없이 먹은 첫저녁


하얀건 리코타 치즈요 검은 건 포도다. 밤이 올라간 리코타 치즈 밑에는 밤잼도 깔려있다.

포도는 달고 올리브는 짜고 리코타 치즈는 고소하다. 오랜만에 레시피 성공해서 기쁘다.

하 저녁 요리도 성공했고, 회사에서는 이번주까지 그리고 싶었던 화면을 다 개발하고 개운하게 퇴근했으니

목점을 잊자 나는 이제 목에 점이 없는 사람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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