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에 즐거운 근로자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하는 일은 출근뿐인데 쉬는 날 카페에서 책읽기 라는 작은 소망을 이루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근로자의 날 덕분에 나 근로자는 작은 소망을 이루었다. 비까지 와서 금상첨화!
결핍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돈,시간,사랑(외로움) 등의 결핍은 사람 정신의 맨꼭대기에 앉아서 다른 문제를 돌아보지 못 하게 만드는 터널링 시야를 만들고, 느슨함(여유)가 없어져서 다가오는 모든 문제들에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 하게 만든다는 이론을 말한다. 결핍이 사람의 인지 능력에 세금을 매겨 멍청하게 만들기 때문에, 여태껏 나왔던 많은 경제 이론과는 다르게 빈자들의 어리석음 부자의 똑똑함은 그들의 선천적 지능과 관련이 없고, 다만 주어진 지능을 여유있게 쓸 수 있는가, 또는 불운을 견딜만큼 여유가 있는가에 관한 문제라는 거다. 책에서 근거로 드는 수십개의 실험들과 논문들이 모두 흥미롭다.
결핍은 비단 돈뿐만 아니라 시간,외로움등에서도 발생하며 사람들의 정신이 결핍에 사로잡히는 순간 인지,실행,행동 제어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capture라는 단어를 쓴다. 결핍에 정신이 사로잡힌다는 말은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나의 초조했던 시간들과 어리석었던 선택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실 결핍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다’ 또는 카뮈가 말한 것 중에 ’부자들에게 가장 부러운 것은 그들이 젊을 때 부자라는 것이다‘ 라는 이 모든 것들 관통하는 한마디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정량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많은 실험이 필요하구나 하는 피로도 느껴진다.
순수한 관찰과 사유만으로 세상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가장 작은 물질들로 이루어져있다고 통찰했던 최초의 철학자들과 가장 작은 입자를 찾아내기 위한 수천년 과학의 역사를 동시에 떠올리면서 인문학적 통찰과 이과라고 부르는 과학에는 경계가 없다는 걸 느꼈었다. 문과 이과는 교육 시스템의 편리를 위해 그렇게 나누어졌을 뿐, 사람의 인지와 지능이 그런식으로 쪼개질 수는 없다. 사실 모든 학문은 연결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세상의 편리한 구분에 맞추어 내 지성을 한계 짓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는게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실제로 과거의 학자들은 과학자이자 작가이자, 물리학자이자 음악가인 사람들이 드물지 않았다. 아마 그 시절에 어떻게 문과 이과 동시에 하시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을 거다.
요즘 정청래와 권성동 영상을 찾아보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정말 순수하게 웃기기 때문이다. 서로 손가락질 하면서 소리지르다가 별안간 빵터져서 웃는 영상이 많다. 나도 같이 터진다. 둘이 무슨 관계일까싶다. 그걸 보면서 희한하게도, 나도 국회의원하면서 시원하게 면전에 대고 욕하고 소리지른 다음에 빵 웃고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만약 정치하게되면 문과 이과라는 학문의 경계선을 지우는 일을 하고 싶다. 사람들은 선을 그어놓으면 절대 안 넘어가고 그 선이 왜 그어졌는지,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질문하는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에 시스템이 선을 잘 그어줘야 한다.
내 생각에 우리 사회에서 우선적으로 없어져야 하는 선 두개가 엠비티아이와 문과 이과 라는 선이다.
자신을 증명하고 설명할 언어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빠르게 읽히는 그럴듯한 설명에 쉽게 사로잡히기 때문에, 나는 문과야! 또는 나는 F야!라는 설명에 사로잡히고, 나를 설명할 것을 찾아냈다는 만족감에 안정감까지 느끼기 시작하면 그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 나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중심주제라고는 없는 글을 쓰며 즐거운 #근로자의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