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도입부를 발작적으로 뱉어낸 다음, 그 뒤에 오는 말을 바로 잇지 못해서 도입부를 늘 두번 이상 반복하는 사내.
뒤이어 오는 말을 생각하는 동안 눈알을 아래로 굴리는데, 하고 싶은 말이 저렇게 드문드문 떠오르는가, 하고 싶은말이 완성된 채 떠오르긴 하는데 그게 입으로 나오는 길에 망설임에 걸려 토막나서 내보내지는가?
여드름과 발진이 가득해서 늘 쓰라려보이는 빨간 얼굴과 작은키에 마른몸, 늘 더듬으면서 시작하는 말, 체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 하고 오후에는 기절하듯 잠 속으로 빠져드는 저 사내는 앞으로 어떤 세상을 살게 될려나?
졸 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고개의 각이 너무 커서, 마치 내가 여기 완전히 지쳐서 졸고 있수다,
비참하게 돌아온 패잔병이 깃발이라도 흔드는 것 같다.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족히 삼미터는 되는데도 내 시야의 언저리에서 뭐가 왔다갔다 하는 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면, 그 사내의 고개가 앞으로 곤두박질 쳤다가 아주 고꾸라져버리기 직전에 탁하고 스타카토를 끊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그 장면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카랑한 성미의 여직원이 다가가 책상을 딱딱 두드리며, 저기요 하고 깨워도 그는 일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뒤로 혀를 끌끌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자다니 저 안타까운 사람을 어쩌면 좋을꼬, 내 마음은 동정심으로 가득 찬다. 내가 가서 그의 어깨를 잡고 사납게 뒤흔들며 정신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하고 소리치는 상상을 한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 몸에는 누가봐도 하루를 건실히 버텨낼 힘이 없어보인다. 보자마자 저 안에 어느 정도의 힘이 비축되어있을지 쉬이 짐작이 되는 체형인데, 오전에 그저 앉아있기만 해도 그 힘이 다 소진될거라는 건 눈썰미가 없어도 알 수 있다.
서른이 되어 첫 회사에 취업했는데, 점심 이후로는 모든 힘을 소진하고 꾸벅꾸벅 조는 사내. 너무 가여운 마음에 내가 조금 다정히 말이라도 걸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부끄러운 듯 자랑스럽게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말이 시작되자마자 질려버린다. 버벅대며 도입부를 시작하는 순간 그 뒤에 나올 이야기가 뭐든 귀 기울일 생각이 없어진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나의 위선은 여기에서 끝난다. 한 문장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위선의 총량인데 매번 뒷감당할 각오도 없이 던지고 보는 위선의 한 문장 때문에 나도 힘들다.
따뜻한 오후에 약간 과한 외투를 입고는 반팔 입고 있는 나한테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 때문에 이렇게 덥다며 대화를 시도한다던지, 저는 필기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하고 보란 듯 독서를 시작하고는 십분도 채 안되어 깊은 잠에 빠져든다던지, 저는 배고픔을 잘 모릅니다 음식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죠 하고 작위적인 신사톤으로 말한 다음에 (멋있지 않은 말에 왜 멋진 척을 곁들이는지는 의문)
과자를 허겁지겁 먹느라 책상과 허벅지 위를 과자 부스러기로 엉망을 만든다던지, 나로써는 얼른 톡쏘는 억양으로 퉁박을 주고 싶은 모먼트가 계속된다.
배고픔을 모르는 것 치곤 급하게 드시네요?
그러나 그러한 마음도 잠시일 뿐, 도통 자리잡지 못하는 시선과 시선만큼이나 위태로운 몸매를 보자면 머릿속에 떠올랐던 모든 구박의 말들을 흘려보내게 된다. 이런말 좀 그만 떠올려 이나쁜년아… 하는 자책과 함께
언제 저 청년은 자신의 경험과 영혼에서 나오는 말들로 본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될까? 나도 어릴 때 남의말을 주워다가 나를 증명하느라 저렇게 앞뒤가 안 맞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