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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디아워스

10평을 대청소하며

by 우엥

하루 종일 대청소를 했다. 오전 11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까지 무려 8시간에 걸친 대청소였다.

이렇게 작은집을 이렇게 오래 청소해본 건 이곳에 살고 있는 6년 동안 처음이었으므로, 기록을 남겨본다.


가장 먼저, 비오는 날 신었다가 흙탕물에 젖어 새까매진 운동화를 뜨거운 물에 세제를 풀어 담궈두었다. 내가 청소를 하는 동안 까만때가 푹푹 불려나오겠지 하는 기대가 청소에의 의지를 고조시켰다.

베란다 여기저기에 끼워놓았던 짐들을 다 꺼내고, 베란다의 창을 방충망까지 활짝 열어놓고 스프레이건으로 바닥에 물을 쫙쫙 뿌리고 청소 세제를 쫙쫙 뿌려 솔로 바닥을 벅벅 문질러 닦아냈다. 베란다에 있던 건조대와 슬리퍼 바닥도 솔로 문질러 닦아냈다. 방충망과 창틀, 창의 실리콘도 박박 문질렀다. 베란다 청소를 끝내고는 빨래 바구니에 있던 빨래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나왔다.


주방 상부장과 하부장을 모두 열어, 모든 그릇들과 반찬통을 꺼내 안 쓰는 물병, 텀블러 등을 버리고, 있는지 몰라서 못 쓰던 것들을 잘 쓸 수 있는 위치로 옮겼다. 주방 서랍들을 다 꺼내 놓으니 서랍 뒤로 빠져있던 비닐백, 타이레놀, 집게 등이 나왔고 타이레놀은 정말 반가웠다. 과거에 타이레놀을 찾다가 없어서, 약이 이렇게 빨리 떨어졌다고? 라고 의아했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약이 떨어진 게 서랍 뒤로 떨어진거였구나.

양념과 조미료들을 수납 상자에서 꺼내 모두 닦고 수납상자도 모두 설거지 했다. 설거지 후 물 빠지도록 그릇을 놓아두는 그릇 거치대도 설거지 했다. 냉장고를 열어 묵어있던 음식들을 모두 꺼내 버릴 물건 더미에 던지고, 야채칸, 냉동실칸 서랍을 꺼내 설거지 했다. 주방 조리대와 벽면 타일에 세제를 뿌려 끈적했던 흔적들을 닦고 배수구를 내 손이 쥔 솔을 들어갈 수 있는 만큼 깊이 넣어 닦아냈다.


욕실로 들어가 운동화를 빨았다. 이때쯤엔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한편으론 이러다가 대충 빨면 안 빠느니만 못하는거야 하며 운동화가 찢어지지 않을까 싶게 솔로 문질러 댔다. 찢어질까 걱정하면서도 솔질을 멈출 수 없었다. 시동 걸려버린 광기를 이성으로는 멈출 수 없는 순간이었다.

운동화는 겉과 안 모두 꼼꼼히 솔질을 하고, 운동화 끈도 모두 풀어서 끈은 따로 빨래 비누를 뭍혀 조물조물 빨았다.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로 열정적으로 헹구고는 물이 빠지도록 세면대에 엎어두고 나왔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서, 빨래를 널었다. 빨래도 평소보다 과격하게 털어 넣었다. 먼지 한 톨도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역시나 방충망까지 모두 열어놓고 팍!팍! 털어 널었다. 다 널고는 소파 커버와 이불 커버를 모두 걷어 다시 세탁기를 돌리고 나왔다.


거실은 가구들의 위치를 바꿔가며 청소를 했다. 가구를 옮기면서, 가구가 있던 자리에 모여있던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모두 닦아냈다. 안 쓰는 머리끈, 빗, 화장품, 전선들과 케이블들을 모두 정리했다. '혹시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 금지' 라고 중얼거리며 특히 전선들을 많이 버렸다. 양말 서랍에서 목이 늘어난 양말, 누래진 흰 양말들을 골라내고, 브라자 서랍에서 보풀이 많이 일었거나, 밑단이나 어깨끈이 쪼글쪼글 해진 것들을 솎아냈다. 누추해보이는 옷은 입지 않을거야 정성을 많이 들여 관리한 옷들을 입고 다녀야지 다짐하면서 깨끗하고 빳빳한 양말을 꼭꼭 힘주어 개어 넣었다.


현관 앞으로 던져놓은 버릴 물건들이 너무 많아져서 잠시 청소를 중단하고 쓰레기를 버렸다. 양도 많았고, 폐기물 스티커를 붙어야 하는 것들도 있어서 3번이나 왔다갔다 하며 버렸다. 마트에서 폐기물 스티커를 사면서 말차맛 초코칩 쿠키를 같이 사와서 세제 냄새가 폴폴 나는 깨끗해진 주방에 서서 먹었다. 너무 배고팠는데 밥을 차릴 힘이 없었고, 지금 밥을 먹으면 청소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언가에 진심으로 몰두할 때는 허접하게 급히 먹는 식사가 연료다. 초코칩 쿠키를 세개쯤 집어먹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이제 한군데 남았다. 대청소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욕실이다. 하루 종일 청소를 하느라 더러워진 몸과 같이 씻으면 되는 대청소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욕실 세면대에서 물을 빼던 운동화를 베란다의 건조대에 꺼내놓고는 욕실에 있는 모든 것을 닦는다는 각오로 광기에 시동을 걸었는데, 이런 곳에 이런 파이프가, 이런 곰팡이가, 이런 물때가 있다니, 변기 뒷편은 이렇게 생겼구나를 발견하면서 닦았다. 욕실 청소를 끝내고도 광기가 사그러들지 않아서 샤워도 벅벅 했다. 머리 감을 때 두피를 벅벅, 양치도 벅벅, 세수도 벅벅.


욕실 청소와 함께 샤워도 끝내고 나와 집을 둘러보니 벅찬 성취감이 느껴졌다.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리고,머리 말리며 떨어진 머리카락까지 다시 싹 치우고 책상에 앉아 집을 둘러봤다. 완벽하게 맘에 들었다.

저녁 일곱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10평도 안되는 원룸에서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오고, 이렇게 많은 먼지가 나온다는게 놀라웠다. 나 하나가 먹고 살기 위해 이렇게 많은 자원이 필요한가, 나는 이 물건들을 구입하려고 인생의 일부를 바쳐 돈을 벌고 그 돈을 이 물건들과 교환하는가, 그리고 돈을 버느라 산만해진 정신을 구입한 물건들을 버리며 정화하는가, 산다는 건 뭘까, 얼마간 사색에 젖었다.


아직도 현관에 버려야할 물건들이 쌓여있다. 내일 저것들을 버리러 나가면서 또 폐기물 스티커를 사러 마트에 가야 한다. 오늘은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개운하고 지친몸 그대로, 먼지 한 톨 없는 것 같은 침대에 그대로 누워 긴 잠을 자리라.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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