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
드디어 이사갈 집을 구했다.
부동산 정보 웹페이지를 통해 약 3주 동안 지켜보던 매물이었는데, 지켜보다보니 천만원 깎아서 다시 올라왔길래, 토요일 아침 부동산에 전화해서 집을 보러갔다.
실제로 본 집은 사진에서 보던 것 보다 깨끗하고 넓었고, 통창으로 보이는 뷰가 멋졌다. 실제로 본 동네는 거리뷰로 보던 것보다 더 번성하고 사람이 많은 동네였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집을 구할 때 나를 망설이게 하는 건 언제나 예산인데, 거의 6개월 넘게 매물들을 관찰하고 얻은 깨달음은 내가 원하는 예산과 내가 원하는 집의 컨디션을 다 만족시킬 순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떤 집을 보고와도 내가 이 금액을 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이 금액을 감당하지 않겠다면 지금과 비슷한 평수의 집으로 가야하는데 그걸 상상하면 우울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랑 지금의 월수입, 저축액을 비교하면 놀라운 성장이 있었음이 분명한데 왜 5년 동안 성장한 재력이 있는데도 이사갈 수 있는 집들은 거기서 거기일까?
그건 내가 돈을 더 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더 나은 환경을 원하면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게 당연한데, 난 돈을 더 쓸 생각은 없이 더 나은 환경만 찾아 돌아다녔으므로 원하는 집을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모든 망설임과 두려움, 씁쓸함들을 그냥 콱 밟아버리고 나는 금액을 감당하기로 했다. 높은 대출 이자와 주거비를 감당해보기로, 결정했다. 어느덧 삼십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으니 이런 결정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임을 인정했다. 대출 이자를 이만큼 내지 않으면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이 1년,2년,3년...이면 무려 얼마인데 라는 계산을 하지 않고 그냥 주거 수준을 높여서 살아 보기로 큰 결심을 해버렸다. 생각해보면 유럽에 살 때는 이 정도 월세와 관리비를 늘 내고 살았었는데, 한국에 돌아와 운 좋게 행복주택에 입주하는 바람에 주거비가 십만원 남짓인 생활에 익숙해졌던 거였다. 그 덕에 여기 사는 동안 저축 많이 할 수 있었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었고, 운전도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은 마음에 드는 집으로 이사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집에 살면서 쌓은 것이 많다. 많이 쌓아두었으니 이제는 누려도 좋겠지, 예쁜 집에 앉아서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그래서 더 연봉을 높일 수 있지, 삶의 난이도를 조금 올리는 것은 안정적이다 못해 권태로운 내 커리어에 자극제가 될 수 있겠지. 흐뭇하고 결연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내 10년이 넘는 자취의 역사 동안 거쳐간 수많은 집들 중 가장 역세권에,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비싼 보증금을 내고 들어가는 집이다. 내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주거비다. 내 앞에 아직 수많은 이룰 것이 남아있음에 감사하며,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