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불안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갈망하는 마음을 옳은 것을 추구한다고 오해하며 살아왔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결핍된 부분을 즉각 인지하도록 진화해 왔다. 그래야 살아남았으니까. 배가 고프면 영양소가 결핍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유전자를 가진 인간들만이 후손을 남겼고, 나도 그 후손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당장 내일의 식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속에서 나의 유전자들은 굶주림 대신 더욱 복잡하고 추상적인 결핍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만인이 보기에도 잘 썼다는 말을 듣고자 하는 마음, 즉 성공의 결핍이 나를 글쓰기에서 멀어지게 했다.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기재한 글이 벌써 2년이 넘었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여러 번 들었지만, 쓰지 않았다. 저번에 썼던 것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잘 못 쓴 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쓰레기 같은 나의 글을 읽을 익명의 브런치 이용자들이 내게 코웃음을 치며 나의 자존심에 균열을 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훌륭한 글쓰기는 무엇인가. 7-8점대의 준수한 평점을 받는 대중적인 영화가 평론가들에게는 삼류 영화로 평가되는가 하면, 많은 지지율에 힘입어 성공적인 임기를 지냈다고 평가받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이민자 보호에 힘쓰는 어느 한 인류학자의 저서에서는 처세만 잘하는 정치인으로 생각된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바라보던 나의 글은 무엇이었나. 스스로를 성공의 틀에 가둔 채 100점짜리 글을 찍어내는 활자가 되고 싶었던 건가.
또, 소속감의 결핍이 타인과의 깊은 관계를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받는 긍정이 중요한 사람이다. 많은 노력 끝에 이 타인 의존적 성향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내 본성의 뿌리는 여전히 타인에게 내려있다. 그래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중하고 재치 있는 모습을 보이려 애쓴다. 그러다 보니 나의 생각과 행동을 타인의 시선에 맞게 재단하게 되고, 결국 대부분의 경우 나의 모습은 어중간하거나 부담스러운 인상으로 인식되어 타인으로부터 거부감을 유발하게 된다. 그렇게 나를 오해한 타인은 가끔은 무례를 범하며 직설적으로 나를 쳐냈고, 때로는 은밀히 거리를 둔다. 나는 다치고, 상처를 입는다. 또 다른 결핍의 자아를 만들어 낸다. 게워진 마음의 구멍을 보면서 나의 부족함을 상기시키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단 한 번도 멈춰 서서 이 결핍의 이유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충족되었던 순간에 경험한 변화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저 나의 진정성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타인이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할 뿐이었다.
결핍은 나를 나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글쓰기는 내게 자기 인식의 도구이자 세상을 정의하는 방법인데, 성공의 결핍에서 비롯된 강박이 나를 글을 쓰지 못하도록 내쳤다. 하루, 혹은 일주일, 하다못해 한 달에 1시간만 투자해도 글 한 장은 쓸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타인의 긍정을 추구하는 대신 자기 계발과 자아성찰에 신경 쓸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핍이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게 결핍된 것을 가져야만 내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나에게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나의 손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행복한 사람이고, 결핍이 주던 힘든 모든 역경들은 눈 녹듯 사라질 테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결핍이 해소되면 장기적으로 행복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겠다만, 대부분의 경우 비슷하거나 새로운 결핍이 생성된다. 그럼 인식하게 된 결핍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도 욕구인데, 무조건 참으면 골병이 날 것 같고, 해소하자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꼴이 되고.
가장 쉬운 방법은 결핍이 해소되지 않았을 때 내게 발생하게 될 상황을 예측하는 것, 즉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인 것 같다. 성공의 결핍이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낸 계기는, 나는 성공하지 못하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행할 것이고, 그렇게 살다가 삼류 브런치 작가가 되어 깊은 심연 속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을 다스리지 못한 것에 있다. 불안을 인식하는 것이 첫 단추다. 다음은 불안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자기 최면, 혹은 사실 직시이다. 내가 좋은 글을 연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쌓으려는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만나는 타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해서 나는 평생 혼자 외톨이로 의지할 곳 없이 살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내가 경험하는 결핍은 굳이 해소되지 않아도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결국 이 결핍은 생존에 필수불가결했던 내 선조의 유전자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아마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다. 결핍이 가리던 나의 필요한 부분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될 테니까. 어쩌면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던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수도 있다.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게 무엇인지 서서히 눈에 밟힐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내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글은 이렇게 썼지만 여전히 행동으로 옮기는 건 어렵다. 여전히 생각이 많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결핍의 늪에 빠뜨린다. 어디 약속 잡아 놓은 것도 아니니까, 서둘러 발걸음을 옮길 생각 말고 한 걸음씩 내 속도에 맞게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