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란트라라 쓰고 엘란 TRA라 읽는다.
서울 32마 1442. 폐차시킨 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나의 첫 자동차.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앞둔 2001년 어느 날, 아버지는 자취하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내게 차를 사주시기 위해 장한평 중고차 매매시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지금은 온라인에서 수많은 정보를 미리 알아볼 수 있으나 당시엔 직접 가야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절이었기에 어느 차를 얼마의 가격에 살 수 있는지 아무런 정보를 모른 채 방문을 했다. 또 아버지가 어느 정도의 금액까지 염두에 두고 계신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차를 사주기로 결정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고, 다 큰 어른이 한 푼 보태지 못하고 부모에게서 차를 얻어 탄다는 민망함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경한 차 중엔 10년 된 자주색의 200만 원짜리 엘란트라와 1,0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닐도 뜯지 않은 신차급의 흰색 EF소나타가 있었다. 마음은 당연히 소나타로 향해 있었으나 그 차를 사달라고 조르질 못했다. 나이만 어른이 아니라 군대도 다녀온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200만 원짜리 엘란트라를 구매해서 집에 바로 몰고 왔다.
몇 달 전 아버지와 이때(벌써 20년 전)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에 소나타를 사주지 않은 걸 후회하셨다. 당시 소나타를 사줄 충분한 재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학교생활 2년 남짓만 타게 될 거라 생각해서 굳이 좋은 차를 사주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렇게 사게 된 10년 된 중고차를 구입하여 10년을 타게 될 거라고 생각 못하셨다고 하셨다.
나 역시도 그 차를 대학을 졸업하고 연애를 하면서, 그리고 취업하여 직장에 다니면서까지도 계속 타게 될 거
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한 번 사서 내 것이 된 물건에 유난히 애착이 강했던 내 성향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내 옷 장엔 10년 이상 된 옷들이 즐비하다. 엘란트라 이후에 구매했던 두 번째 차도 2년 된 중고차를 구입해서 지금 11년째 몰고 있다.
어디에서 발새하는지 알 수 없는 잡음으로 인해 운행 중 큰 사고가 날 것만 같은 괜한 불안감에 엘란트라를 폐차시켜야 했던 그때의 그 미안함, 안타까움, 그리고 생이별의 아픔이 지금도 아련히 가슴에 남아 있다. 장장 10년 동안 내 삶을 함께 공유했던 소중한 벗을 안락사시킨 것만 같았기 때문에.
지금 타고 있는 두 번째 차는 나의 아내 그리고 내 예쁜 두 딸과 함께 삶을 공유하고 있다. 4인 가족이 타기에 차가 비좁아 좀 더 큰 새 차를 사려고 고민하고 있는 요즘, 내 첫 차가 많이 생각났다. 달랑 200만 원이었지만 너무나 소중했던 내 차. 육아하는 맞벌이 부부라 새 차를 사도 현재 차는 계속 같이 운행을 하게 될 것 같다. 다행히 작별하는 슬픔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아 안도가 된다.
이다음의 차는 또 다른 10년 뒤가 될까? 10년 후면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을 즈음이 될 것 같다. 나의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하는 다음 10년 그리고 그 이후의 또 10년은 어떤 차와 함께 하게 될까?
* 엘란트라: ‘엘란트라’라고 쓰고 ‘엘란 TRA’라 읽는다. ‘엘란’이라는 멋진 스포츠카가 있던 시절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