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단식이야?간헐적 폭식이야?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식이요법들 중 너무나도 많이 접했던 두 가지가 있다. ‘저탄 고지’ 그리고 ‘간헐적 단식.’ 하도 자주 접하다 보니 이 단어들이 주는 생경함마저 사라져 버렸다. 가까운 지인들 중에서도 이 식이요법들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일 년에 365일, 한 달에 30일, 그리고 일주일이면 7일 동안 늘 감량을 꿈꾸기만 하는 내게 이 식이요법들은 언젠가는 도전해야 하는 과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먹는 걸 참는 것이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이다. 감량을 위해 야식을 먹지 않겠다고 정해도 며칠뿐이고 곧 유혹에 넘어가기 일쑤다. 이런 내가 과연 자유로운 식습관을 버릴 수 있을까?
어린 시절에는 워낙에 활동량이 많았고 몸의 신진대사량도 높아서 원하는 것을 아무 시간에나 먹는 식습관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 어느덧 불혹을 넘어 지천명을 향해 달려가면서 비만으로 인해 대사증후군을 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등등 건강검진 때마다 경고음이 늘 울린다. 내 배와 허리는 보기 흉하게 불룩 튀어나와 있어 이제 옷을 입어도 전혀 태가 나질 않는다. 배에 힘을 주고 다니지 않으면 너무 부끄러워서 어딜 나다니기 싫어질 정도이다. 건강과 외모 모두가 망가지고 있다.
설 연휴가 끝나고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나보다 신장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는 녀석인데 연휴기간 동안 그냥 쭉 단식을 해서 6kg을 감량했다고 했다. 본인의 성취가 자랑스러워 자랑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게 자극이 되었을까? 그 날 저녁 자연스럽게 간헐적 단식에 돌입했다. 구체적인 실천 계획은 없었지만 막연하게나마 저녁을 굶고 다음날 아침식사 때까지 굶겠다는 계획.
코로나로 인해 설 명절 모임을 못하고 뒤늦게 찾아간 처가댁에서도 저녁식사를 건너뛰는 대범함을 보이면서까지 저녁 식사를 잘 굶었다. 먹지 않는 고통을 참으면서 어떻게든 간헐적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몸무게는 제자리였다. 먹는 걸 참는 데에 한계가 다다랐고 성과도 없다 보니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가 없었던 내 간헐적 단식은 2주 만에 흐지부지 종료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단식을 포기하고 지내던 때에 우연히도 단식 애플리케이션(앱)을 접하게 되었다. 앱은 뭔가 구체적이었다. 초급, 중급, 고급. 초급은 14시간 단식 10시간 식사, 중급은 16시간 단식 8시간 식사, 그리고 상급은 24시간 단식과 같은 구체적인 숫자가 명시됐다. 그리고 지금 몇 시간 째 단식 중인지 그래서 몸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등을 보여주니 신기하게도 매우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아침을 건너뛰는 중급 계획은 오후 7시부터 단식이 시작되어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물이나 당분 없는 음료(아메리카노, 홍차 등) 외에는 섭취를 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렇게 두 주 반을 잘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내 몸무게는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몇백 그램 늘었다. 흔히 말하는 16시간 단식 8시간 폭식(?)의 결과 때문인 것 같다. 11시 땡 되면 출근길에 챙겨 온 천혜향이나 바나나 같은 간식을 섭취하고 곧이어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면 우유가 들어간 라테 음료도 서슴지 않고 마시고 평소엔 잘 먹지 않았던 사무실에 비치된 과자 간식들을 먹곤 했다. 단식을 대비해 먹을 수 있는 시간 동안 매우 잘 먹고 있는 거다.
이렇게 감량의 성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간헐적 단식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16시간이라는 단식이 몸에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속이 편하다. 20시간 이상 가동되던 소화기관들이 비로소 쉼을 얻게 되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매우 배고파하며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배고픔을 느낀 경우가 매우 드물다. 이렇게 오랫동안 배고픔을 느껴본 적 없던 내가 다시 배고픔을 느끼게 되었고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아직 도전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24시간 단식도 성공해야 하고, 간헐적 단식에 이은 간헐적 폭식을 멈춰야 하는 목표도 존재한다. 그리고 단식과 함께 운동을 병행해서 효과를 극대화해야 하는 다음 단계도 남아 있다. 어쨌든 그 첫 단추는 잘 꿰진 것 같다. 작은 성공이 주는 자존감의 상승 그리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하는 더 큰 성공의 쟁취. 다음 단계들을 성공적으로 이어나가‘ 감량 성공기’를 쓰게 될 날이 곧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