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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g Apr 30. 2021

자전거를 꺼내다

내가 쓰는 건 내가 고친다 - 자전거편 1

육아 휴직 기간이 막바지로 다다랐을 즈음 코로나 19 시대를 맞이했다.


육아 휴직 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자녀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주체적으로 살아왔는데 이젠 아이들에게 맞춰 살아가야 하는 종속적인 존재가 되었다.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과 의무이기에.


그래도 하루의 몇 시간은 나에게 꿀 같은 자유시간이 생기는 날이 시작됐다. 바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겨두는 시간이다. 처음으로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보냈던 날 나에게 주어진 그 몇 시간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육아 휴직의 남은 세네 달은 나만의 시간도 갖고 뭔가 의미 있거나 재미있는 것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감격해했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고 나는 두 아이와 24시간을 같이 지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소진되며 지쳐가는 삶에 돌파구가 필요했던 어느 날, 육아로 힘들어할 게 뻔한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찾아오셨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아이들 점심을 먹이고 낮잠을 재웠다. 보통 둘째만 낮잠이 드는데 그 날은 다행히도 첫째도 함께 낮잠에 들었다. 너무나도 소중한 한 시간 남짓의 자유시간이 생긴 것이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책 한 권 들고 카페를 찾았을 텐데 코로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막연한 두려움에 실내에 들어가거나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가기가 겁이 났다.  


오래된 물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격 탓에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근 30년 된 자전거는 여러 번의 이사와 결혼 후에도 늘 나를 따라다녔고 집 대문 앞에 서 있었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탔을까? 그나마 실내에 늘 보관돼 있었기에 연식에 비해 쌩쌩해 보였다. 바퀴에 공기를 주입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집 근처의 호수공원을 자전거로 내달리는데 마스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봄기운이 무르익는 3월 말의 날씨까지 더해져 나에게 큰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첫 라이딩에서 자전거가 다행히 굴러가긴 했으나 문제가 많았다. 나사 조임이 느슨해져 페달이 흔들리고 기어는 고착되어 변속이 일부 되지 않았으며, 변속 케이블과 브레이크 케이블도 전반적으로 녹슬고 늘어나 있었다.


나에게 해방을 선사한 라이딩을 한 번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지속적으로 틈틈이 라이딩을 하기 위해서는 자전거 정비가 절실했다. 자전거 전문점에 맡기고 싶어 찾아갔으나 고치기보다는 교체를 권하는데 그 금액이면 자전거를 새로 하나 사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도 없고 귀찮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망설여졌으나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 스스로 정비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X세대인 나는 필요한 정보를 네이버에서 검색하지만 MZ세대는 유튜브를 이용한다는 얘길 들었다. 정말 놀랍게도 원하는 다양한 정보를 유튜브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심지어 그 정보가 사진과 글이 아닌 육성 설명을 포함한 동영상이다 보니 이해하기가 매우 용이했다.


자전거 샵 사장님은 변속 레버를 고칠 수 없고 교체만이 해답이라 했지만 자전거 정비 유튜버는 변속 레버는 매우 견고한 제품이라 웬만해선 고장이 잘 나지 않고 고착이 되는 거라며 고착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사를 풀어 레버를 분해하고 분해한 레버에 윤활유를 뿌리고 닦아가며 작동시키다 보니 고장난 듯 움직이지 않았던 레버가 얼추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자전거 변속 레버

재조립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분해 전 사진을 자세히 찍어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아마도) 제대로 재조립을 해냈다.


그렇게 라이딩과 자전거 정비의 길로 들어섰다. 시간 날 때마다 라이딩을 하면서 자전거를 정비했다. 유튜브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느슨해진 변속 와이어를 팽팽하게 당겨주고 브레이크를 정렬시키고 느슨해진 부속품들의 나사를 조였다.


그러나 너무 오래 방치돼 있던 자전거를 고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유튜버들이 설명해주는 자전거 지식들은 최근 자전거에 관한 것이라 내 자전거와 맞지 않는 내용도 많았다. 단편적인 일례로 요즘의 자전거 브레이크는 오른쪽이 뒷바퀴, 왼쪽이 앞바퀴인데 내 자전거는 그 반대였다.


그리고 사실 더 큰 문제는 장비의 부족이었다. 이건 정비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장비가 있어야만 정비가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자전거를 타면서 힘든 코로나 육아 휴직 기간을 버텨내는 남편을 보며 아내는 새 자전거를 살 것을 '강력 권고'하였다. 역시 나의 아내님. 기승전 아내 사랑! 오래된 자전거를 가지고 끙끙 씨름하는 남편 보기가 안쓰러웠던 것 같다. 자가 정비를 하면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나쁘지 않았지만 육아를 하면서 시간을 쪼개 정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정비에 대한 부담 없이 마음 편하게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귀차니즘'도 발동했다.


코로나로 인해 수급이 어려워 자전거 구매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렵게 온라인을 통해서 적당한 자전거를 하나 구매했고 나의 오래된 친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이에게 보내주었다.


새 자전거를 장만했으니 '정비 꿈나무'는 잠시 꿈을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쓰는건내가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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