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아빠의 아침 밥상 #71 (23.09.12)
휴직 D+104일
오늘의 아침 밥상 '볶음 고추장 스팸 삼각주먹밥'
지분(持分)
명사 공유물이나 공유 재산 따위에서, 공유자 각자가 소유하는 몫. 또는 그런 비율.
유의어 몫 쿼터
사전에서 '지분'의 뜻을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아침 밥상에 때아닌 지분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오늘 아침 밥상 메뉴인 '볶음 고추장 스팸 주먹밥'의 평가가 내려진 다음이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밥상을 만들고 정성껏 밥상을 차린 뒤 따님의 평가를 받았다.
오늘 따님의 평가는 A+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당연히 A+를 확신했기에 (이건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거든) 목에 힘이 들어가려 하는 찰나, 아내의 말 한마디로 사건은 시작되었다.
"오늘 아침은 내가 만든 거나 다름없지, 볶음 고추장 삼각김밥인데 맛을 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고추장 아니겠어? 이 마법의 볶음 고추장은 우리 따님이 어릴 때부터 최고 좋아하는 거잖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고추장 볶아 놓았다고 오늘 성과를 본인 것으로 가져가려 하다니, 이건 너무한 처사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순창 고추장으로 만들었으면 순창 고추장 회사에 공을 돌려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아내의 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도 이에 지지 않았다. 아내는 '오늘 주먹밥의 기막힌 맛은, 만약 판매용 고추장으로 만들었다면 나올 수 없는 맛이었음을 인정하는지' 물었고 '오늘 주먹밥에 들어간 재료가 밥, 볶음 고추장, 스팸, 참기름, 김, 통깨인데, 밥은 밥솥에서 만들고, 스팸은 굽기만 했고, 김도 시판용을 잘라 붙였고, 참기름도 판매용을 썼으니 차별화된 맛을 낸 것은 볶음 고추장의 역할이 가장 크지 않겠느냐'면서 자신의 의견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었다. 나는 아내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오늘 A+의 지분을 확실히 정리해서 절반이상 즉 60% 정도는 엄마가 만든 것이다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순간 할 말을 찾을 수 없었고 이래서 남편들이 아내를 이길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왜 뭔가 해야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난 수고를 비롯해 정성을 들여 주먹밥을 만든 과정이 단지 '재료를 섞은 행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같아 이대로 물러서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반격을 준비하려던 순간 우리의 용사 따님이 나서셨다.
"지분 다툼 있으면 오늘평가는 F가 됩니다! F지분 60% 엄마가 가져가실 건가요? 아빠가 가져가실 건가요"
그렇다! 따님의 해결책은 아침 밥상 솔로몬의 재판이다! 나는 내가 낳은 자식이니 F지분도 내가 다 가지고 가겠다고 냉큼 말했다. 한 발 늦은 아내가 웃음을 터트린다.
아침부터 유쾌한 지분다툼으로 밥상이 즐겁다.
바쁜 아침 시간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로 하루를 열 수 있음에 감사한 아침이다. 휴직을 하고 나서 아침에 세 식구가 도란도란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다. 물론 고등학생인 딸이 급하게 등교하는 일이 많으므로 매일이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휴직으로 인해 가끔씩 이런 유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아내의 볶음 고추장은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렇게 맛있는 걸까? 다음 도전은 아내표 볶음 고추장이 될 것 같다.
71번째 아침 밥상 : 볶음 고추장 스팸 삼각 주먹밥 (난이도 하, 볶음 고추장 제조 제외))
소요시간 : 10~15분 (볶음 고추장 제조 제외)
[재료]
밥, 볶음 고추장 (아내님 제조), 스팸, 참기름, 김, 통깨
[레시피]
밥 1~2 공기에 볶음 고추장과 참기름 1큰술을 넣고 섞어준다 (취향에 맞게 고추장 양과 참기름 양 조절)
스팸은 작게 잘라 팬에 구워 키친타월로 기름을 제거한다.
밥 한 덩이를 둥글게 만든 다음 가운데를 오목하게 만들어 스팸을 넣고 덮은 뒤 삼각형 모양을 만든다
김을 잘라 삼각형 하단 부분에 붙이고 상단은 통깨를 찍어 예쁘게 만든다
[Tips!]
삼각형 모양 틀을 사용하면 손쉽게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손으로 모양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고추장을 사용하므로 소금 간은 따로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