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대웅 Oct 04. 2023

화석연료 없는 세상은 가능할까

리튬이온전지와 일본 기업 연구소의 저력

2019년 7월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발표되었다. 규제 대상은 폴리아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소재였다. 반도체는 삼척동자도 아는 국가기간산업이다. 삼성전자의 주식을 가진 국민만 600만 명이 넘는다. 그러니 그야말로 국민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조치였다. 물론 일본 정부는 무역 보복이 아닌 정책 조정이라 했으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몇 년간 정치, 외교, 역사를 두고 꼬여왔던 양국 관계가 산업계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였다.

 

그간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석권해왔다. 그러나 핵심 소재와 기술은 대부분 로열티를 내고 수입해서 쓰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한국 제조업의 구조적 취약성이 있었다. 수출 규제는 이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일본이 급소를 찌른 것이었다. 발표 직후 업계는 패닉에 빠졌다. 정부는 이참에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자립화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기초 역량은 그렇게 단시간에 키워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것이 한때 떠들썩했던 소부장, 즉 소재・부품・장비 사태이다.

우리나라의 기술무역수지, 즉 기술수출 대비 기술수입의 비율은 언제나 심각한 적자였다. 이러한 경향이 소부장 사태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었다. 화학상은 리튬이온전지 개발자 3명에게 돌아갔다. 그중 한 명이 요시노 아키라(吉野彰)라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하필 이 해에, 그것도 소부장 연구성과로 일본인이 노벨상을 또 받은 것이다. 노벨상은 명예와 자부심의 상이다. 남들이 받는다고 해도 그저 부러운 걸로 끝이다. 하지만 기초연구, 과학기술 역량은 국가경쟁력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현실적인 문제다. 리튬이온전지 같은 핵심기술의 부가가치와 파급효과는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어렵다. 이 해 일본의 노벨화학상은 바로 이렇게 우리에게 현실의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2차 전지의 유용성

     

리튬이온전지에는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화석연료 기반의 생산활동을 바꿀 잠재력이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또 한 번의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석탄, 석유 등 핵심 동력원의 교체를 동반해왔다. 특히 20세기 초 2차 산업혁명은 석유와 자동차가 만나며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다. 리튬이온전지는 주로 IT와 스마트 산업의 진보와 공명해왔다. 이것이 자동차, 로봇, 기계 등 전통적 제조업까지 포괄한다면, 생산방식은 물론 인간을 괴롭혀온 환경문제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룰 것이다. 그만큼 혁신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노벨상을 오히려 너무 늦게 받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리튬이온전지는 2차 전지의 한 종류다. 그럼 1차 전지도 있나? 당연히 있다. 1차 전지는 한번 쓰면 재사용이 불가능한 일회성 전지다. 가정의 시계, 리모컨, 도어록 등에 쓰는 건전지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한번 쓰고 버리는 1차 전지는 새 전지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해야 한다. 또한 방전되면 화학물질이 나와서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 반면 2차 전지는 방전이 되어도 수천 번 재충전이 가능해서 경제적이다. 2차 전지의 총아인 리튬이온전지는 카드뮴, 수은, 납 등의 중금속도 포함하지 않는다.


보통 “전기가 흐른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는 전자의 이동을 의미한다. 즉 마이너스 전하를 가진 전자가 플러스 전하를 가진 플러스 극으로 이동하면서 전기에너지가 발생한다. 전지는 화학반응을 통해 이러한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장치다. 흔히 전지 안에 전기가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재료들이 들어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전해액(전해질), 전자 수용물질(양(+)극), 전자 제공물질(음(-)극). 전지는 이 세 가지 재료를 적절히 결합하여 화학물질 사이 전자의 이동을 외부 전기에너지로 변환한다. 전기가 샘솟는 연못이라는 뜻의 전지(電池)라는 번역어는 이를 반영한 것이다. 건전지도 바로 이 화학반응에 따라 전기에너지를 만든다. 다만 건전지는 한번 쓰면 화학반응이 끝나므로 일회성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특정 소재를 이용한 전지는 외부에서 전류를 흘려주면 화학반응이 역으로 일어난다. 즉 다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게 2차 전지의 기본원리이다. 1899년 발데마르 융너(Waldemar Jungner)가 처음 발견했다. 그가 이 원리를 응용해 만든 니켈카드뮴전지는 전동공구, 비디오카메라 등에 사용되었다. 다만 이 전지에는 메모리 효과라는 단점이 있었다. 충전한 전지를 완전히 방전되기 전에 재충전하면, 전기량이 남아있어도 전지가 완전 방전 상태로 기억하는 효과다. 이 때문에 사용할수록 최초의 충전 용량이 줄어들었다.

리튬이온전지의 원리. 방전되어도 외부에서 전류를 공급해주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니켈수소전지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카드뮴을 수소흡장합금으로 바꿔 메모리 효과를 줄였다.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도요타의 프리우스에 쓰인 전지가 이것이다. 이 전지는 특히 저온에서 안정적이어서, 겨울에는 나중에 개발된 리튬이온전지보다도 성능이 뛰어났다. 그러나 니켈계열 전지는 짧은 사용시간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 니켈수소전지를 쓴 초기 노트북은 1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휴대용 전자기기 사용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니켈계열 전지로는 그 수요에 대응할 수 없었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

     

리튬을 활용한 2차 전지 연구는 1970년대부터 시도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시작은 석유회사였다. 당시는 오일쇼크와 환경오염이 지구적 이슈로 떠오르던 때였다. 그래서 석유회사들조차 대체 에너지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1976년 엑손 연구개발팀의 스탠리 휘팅엄(Stanley Whittham)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초전도체를 연구하다가 최초의 리튬이온전지를 만들었다. 니켈카드뮴전지보다 소형에 에너지 밀도가 더 높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고작 2V의 전압을 출력하는 데 그친 그의 전지는 전구 하나를 켜는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불안정해서 폭발의 위험성도 있었다. 2017년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이 여러 번 폭발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휘팅엄은 2차 전지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지만, 이래저래 상용화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었다.


때마침 미국 정부도 에너지 혁신을 위한 국책 연구사업을 입안했다. 이를 총괄한 것이 MIT 링컨연구소의 존 구디너프(John Goodenough)였다. 구디너프는 갓 등장한 리튬이온전지를 화석연료의 유력한 대안으로 보았다. 이게 무려 40여 년 전이니 대단한 혜안이었던 셈이다. 그의 목표는 휘팅엄 전지의 전압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에 리튬에서 나온 전자를 받는 양극 소재로 이황화 티타늄 대신, 에너지 밀도가 높고 분자 구조가 유사한 리튬 코발트 산화물을 사용해보았다. 그 결과 기존의 2배 출력인 4V 전지를 만들 수 있었다. 이는 딱 휴대전화의 전원으로 쓸 수 있는 정도의 전압이었다.

 

그러나 리튬이온전지의 불안정성 문제는 계속 상용화의 발목을 잡았다. 1987년 캐나다의 몰리 에너지라는 회사는 ‘몰리셀’을 출시하여 처음으로 리튬이온전지의 상용화에 도전했다. 그러나 거듭된 폭발사고로 결국 파산해버렸다. 문제는 음극으로 사용한 리튬 금속에 있었다. 리튬 금속을 음극으로 사용하면 방전 시 음극에서 전자와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빠져나가고, 충전 시 양극에 있는 전자와 리튬이온이 음극 전극판에 다시 모인다. 이때 바늘 형태의 수지상(dendrite) 구조를 형성한 리튬 금속이 계속 성장하다가 양극에 닿으면 폭발을 일으킨다. 리튬이 가진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치명적 문제 때문에 상용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리튬이온전지의 폭발 위험은 오랫동안 상용화의 걸림돌이었고, 여전히 그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튬이온전지의 완성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요시노였다. 1982년 아세히카세이라는 회사의 기술연구소에서 일하던 요시노가 리튬이온전지를 접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원래 그는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 즉 전도성 고분자를 연구하고 있었다. 이에 폴리아세틸렌으로 여러 실험을 해보았는데, 이걸 2차 전지의 음극 재료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와 조합할만한 양극 재료가 없었고, 결국 요시노의 프로젝트는 좌초 위기에 놓였다. 할 일이 없어진 는 이런저런 논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때 우연히 구디너프의 리튬이온전지에 대한 논문을 읽은 것이다. 이때 요시노는 구디너프가 쓴 리튬 코발트 산화물을 양극 재료로 쓰고, 폴리아세틸렌을 음극 재료로 써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실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요시노가 시험 삼아 만든 리튬이온전지는 기존 어떤 제품보다 가벼웠다. 그래서 곧바로 특허를 내고 본격적인 리튬이온전지 개발에 착수했다.


물론 개발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일단 폴리아세틸렌은 경량화에 강점이 있지만, 소형화에는 부적합했다. 결국 요시노는 폴리아세틸렌을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시도했다. 4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석유 코크스라는 탄소 재료를 찾아냈다. 이건 일본에서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희귀한 재료였다. 그래서 이를 의심스럽게 여긴 경찰의 수사까지 받아야 했다고 한다. 요시노의 연구팀은 석유 코크스 실험의 와중에 몰리셀의 폭발 사고 소식을 접했다. 충격적인 뉴스였으나 오히려 성공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한다. 몰리셀은 리튬 금속을 음극 재료로 썼지만, 요시노의 팀은 그와 대척점에 있는 석유 코크스를 도입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예상은 잘 맞아떨어져서 안전성 문제는 해결되었다. 마침내 1991년, 요시노가 개발한 리튬이온전지가 소니를 통해 최초로 출시되었다.


리튬이온전지 상용화로 인간의 삶도 달라졌다. 충전해서 1시간 남짓 쓰던 노트북은 몇 시간은 너끈히 쓸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소형 가전기기들도 충전식으로 바뀌었다. 무선 청소기가 대표적이다. 안전성을 이유로 니켈카드뮴전지를 고수하던 전기자동차 업계도 점점 리튬이온전지로 선회했다. 핸드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누구나 생활필수품으로 리튬이온전지를 몇 개씩은 소유하는 세상이 되었다. 노벨재단도 이렇게 ‘충전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로 2019년 구디너프, 휘팅엄, 요시노에게 노벨화학상을 수여했다.

2019년 노벨화학상은 리튬이온전지 개발자들에게 수여됐지만, 세상에 대한 기여에 비해 너무 늦은 수상이라는 말도 많았다.


리튬이온전지라는 대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리튬만큼의 고효율 소재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리튬 수요량은 2017년 25만 톤에서 2025년까지 71만 톤으로 약 3배 급증할 전망이다. 물론 차세대 전지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나, 대부분 리튬을 기본으로 한 변주들에 가깝다. 그런 만큼 리튬의 확보량과 가공능력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리튬 전쟁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 점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몇 발자국은 앞서 나가고 있는 셈이다.



    

2000년대 일본이 노벨상을 휩쓴 이유

     

일본은 1949년 첫 노벨과학상(물리학)을 받았다. 현재까지 수상자 수는 총 25명이다. 그 추이를 보면 특이한 점이 두 가지 발견된다. 첫째는 초반에는 수상자가 띄엄띄엄 나오다가, 2000년 이후로 확 급증한다는 점이다. 25명 중에 2000년 이후 수상자만 20명이다. 둘째로 초창기에는 물리와 화학 분야의 이론적 업적이 두드러지다가, 역시 2000년 이후에는 기술 개발이나 제품 발명 같은 실용적 성과들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R&D 투자와 노벨상 수상까지의 시간차를 반영하는 것이다.

 

노벨상은 보통 2~30년 전의 연구성과에 수여된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코로나19 백신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수상 대상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지식의 최초 발견자가 된다. 그런데 첫 발견에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실제로 변화시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리튬이온전지의 경우 1976년 첫 개발에서 1991년 상용화를 거쳐 그 효과와 영향력이 입증되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 노벨상을 받는 다른 성과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2000년 이후 일본 노벨상 수상의 급증 이유는 1980년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80년대는 일본의 성장이 최정점에 이른 거품경제 시대였다. 이때 일본 기업들은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하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그리고 상당 부분을 R&D에 과감히 쏟아부었다. 이때의 대규모 투자가 2~30년 뒤 노벨상을 받을만한 성과로 나타난 것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과학기술에서 기업들의 역할은 중요했다. 이미 1960년대 초부터 기업 연구소 설립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정부도 통산성 산하에 공업기술원(현재의 산업기술총합연구소)을 두어 기업 R&D를 재정적, 기술적으로 지원했다. 이러한 양상이 거품경제 시대를 맞으면서 시너지가 극대화한 것이다.

아직도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위엄. 이때 일본 기업들은 엄청나게 축적한 부를 R&D 재투자했고, 그게 20~30년 뒤 무더기 노벨상으로 돌아온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연구하기 좋은 환경으로 유명했다. 충분한 연구비를 주면서 원하는 연구에 대한 자유를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이공계 박사학위 취득자들은 보통 대학교수가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때 일본만큼은 예외였다. 유능한 인재들이 기업행을 택했고, 별의별 특이한 연구에 도전했다. 요시노도 바로 이때 기존 프로젝트의 실패를 딛고 리튬이온전지라는 고위험 고수익 연구에 재도전했다. 그리고 아사히카세이는 무려 10년 가까이 걸린 이 연구를 참을성 있게 지원해서 끝내 결실을 보았다. 이외에도 생체 고분자의 질량 분석기을 개발한 다나카 고이치(2002년 노벨화학상), 청색 LED를 개발한 나카무라 슈지(2014년 노벨물리학상) 등 비슷한 사례는 많다. 일본이 리튬이온전지라는 유망 분야를 선점하고, 소부장에서 절대 강세를 보이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소부장 사태와 같은 상황에 다시 놓이지 않으려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아지는 소자, 변화하는 기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