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트릴로지(trilogy)라는 작품 형식이 있다. 3개 작품을 시리즈로 연결해서 제작하는 방식, 즉 3부작이다. 한 편으로 담기 어려운 크고 복잡한 이야기를 3개로 나누면 짜임새가 좋아진다. 또한 전편의 흥행 성적을 속편들로 이어갈 수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대부>, <백 투 더 퓨처>, <다크나이트>, <반지의 제왕> 등이 트릴로지로 제작되어 대히트했다. 이 작품들은 서사의 폭과 주제의식의 깊이에 있어서 대서사시 같은 느낌을 준다. 한 편씩 봐도 물론 뛰어나지만, 세 편을 하나의 완결된 체계로 보아야 비로소 진가를 맛볼 수 있다.
인류가 빛을 사용해온 역사도 마치 장대한 트릴로지 영화 같다. 인류는 더 밝은 빛을 만들어내고 상용화하기 위한 세 단계를 거쳐왔다. 그리고 이 빛의 인공화 역사가 곧 문명의 발전과도 공명한다. 문명(文明)이라는 단어 자체가 글(文)과 빛(明)의 조합이 아닌가. 일상을 밝히는 전등은 물론, 스마트폰, 컴퓨터, TV, 자동차 등이 모두 빛을 통해 작동한다. 그만큼 빛은 모든 인간 생활과 문명의 기본적인 전제다. 성경의 첫 문장이 “빛이 있으라”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두컴컴한 세상에서 일단 불부터 켜야 무슨 일이든 할 것이 아닌가.
약 40만 년 전 인류는 불을 발견했다. 인류 역사에서 불의 발견이 갖는 의미를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단 생존의 최대 적이었던 추위에 맞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밤을 밝혀 활동 시간을 연장했으며, 음식을 익혀 먹어 수명을 늘릴 수 있었다. 토기와 같은 생활 도구들도 만들어냈다. 다만 불의 원시적 사용, 즉 모닥불, 횃불, 등잔불 등의 밝기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오래가지도 못했다. 이 상태가 무려 몇만 년이 이어졌다.
세 번째 빛의 혁명
1879년 마침내 첫 번째 빛의 혁명이 일어났다. 에디슨이 필라멘트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이다. 전구 안의 필라멘트가 고온의 백열 상태가 되어 빛을 내는 원리다. 이것은 자연의 신비였던 빛을 인간의 통제 범위로 속하게 했다는 점에서 문명사적 전환이었다. 덕분에 인류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자재로 빛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백열전구도 뭔가를 태워서 빛을 얻는 열방사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원시적 불과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 에너지가 열로 빠져나가고 빛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달랑 5%였다. 뜨거운 열로 인한 화재 사고의 위험도 있었다.
두 번째 혁명은 1940년대 초반의 형광등이다. 형광등은 열을 동반하지 않고 빛을 내는 원리를 이용했다. 이걸 루미네선스(luminescence)라고 한다. 형광등은 특히 방사 루미네선스라는 방식을 채택했다. 유리관 안에서 수은 가스를 방전시키면 자외선이 나온다. 이를 형광물질이 다시 가시광선으로 바꿔주는 원리다. 이는 백열전구의 열방사보다 에너지 손실이 훨씬 적어서 효율이 10%에 이르렀다. 수명도 길고 화재 위험도 없었다. 다만 형광등에 함유된 수은이 유해 중금속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수은은 인체에 신경계 손상을 일으킬 수 있고, 물과 토양에 흘러 들어가면 환경오염을 유발했다. 그래서 폐형광등의 관리 비용이 꽤 필요했다.
세 번째 혁명이자 완결편이 1990년대 초반의 LED(Light Emitting Diode, 발광 다이오드)다. LED는 일단 발광 효율과 수명에 있어서 백열전구와 형광등을 압도한다. 밝기 단위인 루멘(lumen)을 적용해보자. 1와트당 백열전구는 16루멘, 형광등은 70루멘이다. LED는 무려 300루멘이다. 백열전구는 약 1,000시간, 형광등은 약 8,000시간 쓸 수 있다. 하지만 LED의 수명은 약 30,000시간이다. 화재 위험도, 환경오염의 우려도 없다. 결국 혁명적 기술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백열전구와 형광등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되었다.
인류 빛의 혁명은 백열전구와 형광등을 이어 LED로 완성된다.
LED는 팔방미인이다. 이걸 안 쓰는 곳을 찾기가 어렵다. 스마트폰, TV, 컴퓨터 등은 물론, 가로등, 옥외광고판, 신호등, 자동차에도 쓰인다. 미적 효과도 뛰어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20세기 자본주의의 야망을 대변했다면, 밤을 수놓는 LED의 향연은 21세기 기술문명의 찬란함을 상징한다. 여러 분야에 파급 효과도 일으킨다. LED 기술로 브라운관 TV는 사라지고 벽걸이 TV의 시대가 열렸다. 또 자동차의 전조등, 후미등, 방향지시등도 LED로 교체되면서 디자인의 제약이 확 줄었다. 요즘 자동차들의 날렵하고 파격적인 외관은 LED 덕분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다. 살균과 소독 효과도 뛰어나고, 우울증 치료에도 활용된다.
하지만 LED는 인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세기의 난제였다. 아이디어는 일찍 알려졌지만, 실용화가 쉽지 않았다. 기술의 진보는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향한다. LED의 경우 색깔이 가장 어려웠다. 적색과 녹색에서 시작해 청색이 완성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적(Red), 녹(Green), 청(Blue)이 모두 필요했던 이유는 삼원색(RGB)이 모여야만 조명으로 쓸 수 있는 백색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인간의 눈과 연관되는 문제다. 망막에서 색상을 담당하는 원추세포가 적색, 녹색, 청색이다. 인간이 느끼는 빛의 색은 곧 이 원추세포들에 인식된 빛의 세기이다. RGB만 가지고도 인간이 인식하는 빛깔을 상당 부분 - 약 8백만 가지 – 을 재현할 수 있다. 삼원색의 마지막 단계였던 청색 LED는 과학자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수십 년 만에 겨우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같은 제품을 색깔만 다르게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오늘날 화려한 도시의 야경, 날렵한 외관의 자동차, 벽걸이 TV 등이 모두 LED를 이용한 것이다.
청색이 어려웠던 이유
전자기파로서 빛은 고유의 파장대를 가지고 있다. 길이에 따라 나누면, 전파/마이크로파/적외선/가시광선(빨주노초파남보)/자외선/X선/감마선이 된다. 즉 전파에서 감마선으로 갈수록 파장은 짧아지고 방출하는 에너지는 커진다. 이중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파장대가 가시광선이다. 가시광선에서는 적외선에 가까운 빨간색의 파장이 길고, 자외선에 가까운 보라색으로 갈수록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커진다.
LED는 전기 루미네선스, 즉 전류를 흐르게 해서 빛을 내는 원리를 이용한다. LED라는 이름도 이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반도체인 두 개(di)의 전극(ode) 사이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전기에너지가 발광(light emitting)한다. 두 개의 전극은 양의 성질을 가진 p형 반도체와 음의 성질을 가진 n형 반도체를 붙여서 만든다. 이를 pn 접합이라고 한다. 여기에 전류를 흘러주면 마이너스 전하를 운반하는 전자가 이동하여 플러스 전하를 운반하는 정공과 결합한다. 그러면서 나오는 전기에너지가 빛의 형태로 발광하는 것이다. 이때 반도체에 사용하는 원소를 다르게 하면 방출되는 에너지의 양도 달라진다. 바로 이 에너지 크기의 차이에 따라 빛의 파장 길이가 결정되고 다른 색을 낼 수 있게 된다.
파장대에 따른 빛의 구분(위)과 LED가 빛을 내는 원리(아래)
파장이 길고 에너지 차이가 작은 빛은 만들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최초의 LED는 적외선 빛이 나오는 것이었다. 1961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제임스 비어드(James Biard)와 개리 피트먼(Gary Pittman)이 갈륨·비소를 써서 만들었다. 적외선 LED는 인간이 인지할 수 없지만, TV 리모컨, 카메라 자동초점, 자동개찰기 등에 유용하게 쓰였다. 1962년에는 제너럴 일렉트릭의 닉 홀로니악(Nick Holonyak Jr.)이 갈륨·비소·인으로 적색 LED를 만들었다. 눈에 잘 띄는 색이라 아폴로 계획의 새턴 로켓에 표시등으로 사용되었다. 다만 이때까지 LED의 빛은 그리 밝지 못했다. 1958년 녹색 LED를 발명했으나 적색보다 훨씬 어두웠다. 그나마 녹색에 대한 인간의 시감도가 적색의 10배 이상이어서 겉으로 보는 밝기는 비슷했다.
다음은 청색 LED 차례였다. 그러나 파장이 짧고 에너지 차이가 큰 청색은 만들기가 가장 어려웠다. pn 접합 구조에서 전자를 높은 곳까지 끌어올려 더 큰 에너지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적 계산을 통해 가능성 있는 재료 후보들이 제안되었다. 탄화실리콘, 셀렌화아연, 질화갈륨의 세 가지였다. 이에 1970년대부터 독일의 지멘스, 미국의 3M과 크리, 일본의 도시바와 도요타 등 유수의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큰 성과는 없었다. 1991년 크리가 최초로 사업화한 청색 LED는 밝기가 10밀리칸델라(mcd)에 그쳤다. 실내용으로 겨우 쓸 수 있는, 파랗다기보다 푸르스름한 빛이었다. 크리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상대적으로 만들기 쉬운 탄화실리콘과 셀렌화아연으로 시도했다. 그러나 어둡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질화갈륨이라는 대안
반면 질화갈륨에 주목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질화갈륨으로는 고품질의 단결정 박막을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도체 재료는 결정격자가 깨끗한 구조로 이루어져야 전자와 정공이 잘 결합한다. 만약 전자와 정공이 제대로 결합하지 못하면, 빛이 나오지 않고 열로 바뀌고 만다. 질화갈륨 결정은 갈륨과 암모니아를 1,100℃의 고온에서 반응시켜 얻는다. 하지만 안정성이 떨어져 결정을 망가뜨리는 변수들이 생기기 일쑤였다. 이런 이유로 지멘스 연구진은 질화갈륨으로는 pn 접합을 만들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1989년 나고야대학교의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와 아마노 히로시(天野浩)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질화갈륨 p형 반도체를 만들었다. 질화갈륨은 안 된다는 오랜 고정관념을 깬, 새로운 돌파구를 연 성과였다. 연구팀은 1991년 새로운 질화갈륨 p형 반도체로 청색 LED를 만들어 보았다. 밝기는 70mcd였다. 기존보다 진일보한 결과였으나, 상업적으로 판매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정공 역할로 주입한 마그네슘도 문제였다. 저효율 고비용에 품질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용화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1993년 니치아화학공업의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 밝기 1칸델라에 이르는 청색 LED를 출시한 것이다. 2년 전 나온 크리의 제품보다 무려 100배나 밝은, 눈부실 정도의 파란빛이었다. 당연히 여기에는 여러 기술적 난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직접 실험기기를 만들 정도로 타고난 엔지니어였던 나카무라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질화갈륨 결정을 만들기 위해 기판 위에 암모니아 가스를 흐르게 하면, 너무 고온이라 열대류가 생겨 결정을 방해했다는 점이었다. 나카무라는 이 문제의 해결에만 1년여를 매달렸다. 그래서 완충 역할을 하는 다른 가스를 위에서 뿌려서 열대류를 억누른다는 해법을 찾아냈다. 다음 해에는 질화갈륨 p형 반도체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아카사키 팀이 채택했던, 전자빔을 쏘아서 반도체를 만드는 방식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나카무라는 800℃로 열처리하는 방식을 고안해서 고품질의 반도체를 단시간에 완성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자 비로소 시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은 흐릿했다. 이제는 밝기를 높여야 하는 과제와 마주한 것이었다.
나카무라는 과감하게 pn 접합을 버리고 이중 이종접합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했다. 두 종류의 반도체막을 조합해 성능을 현저히 높이는 획기적 방식이었다. 발명자인 허버트 크뢰머(Herbert Kroemer)는 이 업적으로 200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다만 청색 LED에 이 방법을 쓰려면 질화인듐갈륨 결정막을 만들어야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카무라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그의 시그니쳐가 된 고품질의 질화갈륨 결정막 제작 기법을 응용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카무라는 마주하는 난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감으로써 고휘도 청색 LED라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개발에 착수한 후 2년 넘게 아무런 사적인 약속도 잡지 않고, 하루 100차례가 넘는 실험을 거듭한 결과였다.
니치아화학공업이라는 시골 중소기업의 샐러리맨이었던 나카무라 슈지는 전인미답의 고휘도 청색 LED 개발에 성공했다.
장인정신으로 극복한 난제
지난했던 청색 LED 개발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장인정신일 것이다. 청색 LED가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것임은 일찍부터 예견되었다. 그래서 1970년대부터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예상 밖의 인물들이었다. 아카사키, 아마노, 나카무라는 유명한 과학자들이 아니었다. 그나마 아카사키는 명문대 교수였지만, 아마노는 대학원생, 나카무라는 샐러리맨이었다.
세 사람에게는 남들이 꺼리는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팠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카사키는 질화갈륨으로는 p형 반도체를 만들 수 없다는 학계의 고정관념에 맞섰다. “마치 황야를 혼자서 걷는 기분이었다”라고 술회할 정도로 고독한 연구였다. 아마노는 그런 아카사키의 진정성에 매료되어 제자가 되었다. 둘은 똑같은 실험을 1,500회 넘게 반복한 끝에야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나카무라는 반도체와 무관한 지방 중소기업의 개발과장이었다. 이름만 개발과였지 인력, 인프라, 예산 등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동료들은 그가 돈이 안 되는 일, 엉뚱한 일에만 정신이 팔려있다고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나카무라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독창적 아이디어란 원래 비상식적이고 엉뚱하기 마련”이라며 주관대로 연구를 밀고 나갔다.
2014년 아카사키, 아마노, 나카무라는 청색 LED 개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본래 노벨물리학상은 자연의 원리를 밝힌 순수과학적 성과에 주로 주어졌다. 하지만 노벨재단은 “백열등에 비해 소비전력은 10분의 1이지만 수명은 100배 이상 지속되어 새로운 빛의 시대를 열었다”며 청색 LED에 시상을 결정했다. 특히 이 새로운 기술이 전력 부족을 겪는 15억 명의 개도국 국민에게 큰 혜택을 줄 것임을 높이 샀다. 이 수상을 두고 미국의 과학 저널은 우연한 발견이라고 평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 명의 과학자가 수년에 걸쳐 반복해온 실험의 과정을 함께 본다면,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아카사키의 말이다. “모든 것이 우연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필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