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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Nov 09. 2023

육각형 보이밴드들

뭐든 다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부, 운동, 예술, 심지어 잘 생기고 인성까지 바른. 나는 한 가지도 없는 걸 몇 가지씩 갖춘 그런 이들을 보면, 경외감이 든다. 사람이 어떻게 저러나 싶어서. 이런 밸런스 붕괴 사기 캐릭터를 예전에는 먼치킨이라고 했었다. 요즘에는 육각형 인재라고 부르는 듯하다.

     

음악에서 대표적인 육각형 인재는 보이밴드다(흥보가 기가 막혀 육각수 말고). 보컬, 외모, 송라이팅, 퍼포먼스, 스타일링, 프로듀싱까지, 못하는 게 없다. 또 보이밴드는 대부분 자생적이라기보다는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다. 그만큼 최신 트렌드를 끌어모으고 최적화해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 없다. 어릴 때 나도 보이밴드를 통해 팝송의 세계에 입문했었다. K팝이라는 단어는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다. 그때 들었던 보이밴드 음악은 머나먼 미국의 맛(?)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게 해준, 세련됨의 극한이었다.



     

New Kids on the Block, <You Got It(The Right Stuff)>  

   

보이밴드의 코페르니쿠스 격인 팀이다. 그만큼 보이밴드의 모든 형식과 내용에 대한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K팝의 과거와 현재에 존재했던 보이밴드들도 계보를 따지면 결국 이 팀으로 가 닿는다. K팝의 단군왕검 이수만이 롤모델로 삼은 이가 이 팀의 프로듀서, 모리스 스타였기 때문이다. 가수로서는 그저 그랬던 스타는 뉴키즈 온 더 블록(이하 뉴키즈)을 제작함으로써 팝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프로듀서가 되었다.


이 팀의 대표곡은 역시 <Step by Step>과 <Hangin' Tough>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You Got It(The Right Stuff)>이 스타일리시한 느낌에서는 두 곡을 앞선다고 생각한다. 이 곡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리듬이다. 통통 튀는 듯한 감각적인 리듬 편곡이 기분 좋게 이어진다. 리듬과 호흡을 맞추는 신시사이저 연주에서는 한때 유행했던 신스팝의 영향도 느껴진다. 이 둘의 쿵짝이 아주 기가 막히다. 그래서 곡에 악기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도 허전하지 않다. 몸을 적당히 튕기듯 움직이는 미국춤(?)과 곁들이면, 요즘에도 꽤 먹힐 것 같다.

     

New Edition, <Can You Stand the Rain>  

   

앞서 소개한 뉴키즈의 프로토타입과 같은 팀이다. 스타가 프로듀싱해서 첫 성공을 거둔 팀이고, 여기서 자신감을 얻어 타깃을 확대한 것이 뉴키즈이기 때문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팀은 흑인 R&B 밴드였다는 것. 그런데 단순히 뉴키즈의 프로토타입이라기에는, 이들이 거둔 성공도 어마어마하다. 90년대 R&B 레전드 바비 브라운과 조니 길이 이 팀 출신이다. 이수만이 SM 1호 가수로 론칭한 현진영도 바비 브라운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후일 팝의 주류가 되는 보이즈 투 멘이나 올 포 원 같은 R&B 보컬 그룹도 이 팀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1988년 빌보드 1위까지 먹은 히트곡이다. 끈적한 보컬과 소울풀한 하모니가 돋보이는 R&B 발라드다. 이제 스무 살을 전후한 멤버들의 앳된 보컬이 우수에 젖은 사운드와 만나면서, 묘하게 성숙한 감성을 만들어낸다. 이들을 존경해마지 않는 후배 보이즈 투 멘이 아카펠라로 커버한 버전도 있다. 다만 원곡에는 한참 못 미친다.

     

Take That, <Back for Good>

    

록의 본고장 영국에서 비틀스 다음으로 성공한 보이밴드. “뉴키즈에 대한 영국의 대답”이라고도 불렸었다. 그러나 음악적으로는 뉴키즈보다 훨씬 뛰어났다. 역대급 싱어송라이터 게리 발로우와, 후일 영국의 국민가수가 되는 로비 윌리엄스가 이 팀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다고, 이 둘의 불화 때문에 팀이 깨지기도 했지만. 그런 면에서 이 팀은 보이밴드의 위대함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뛰어난 창작 역량을 증명했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뛰어나서 정점에서 꼬꾸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결합한 뒤에도 영국의 국민밴드로 대접받는 걸 보면, 그 실력 어디 가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 곡은 테이크 댓의 최대 히트곡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하다. 무슨 자동차 CF에도 삽입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쿠스틱 기타의 부드러운 연주가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간다. 거기에 유려한 멜로디와 달콤한 보컬이 덧입혀지면서 세련된 느낌이 극대화된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당시 가요에는 이런 버터 바른 듯한 세련된 감성의 곡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게는 이 곡이 ‘팝송’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어떤 전형성을 갖는 곡으로 각인되었던 것 같다.

     

Backstreet Boys, <As Long As You Love Me>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뉴키즈가 보이밴드의 코페르니쿠스라면, 백스트리트 보이즈(이하 BSB)는 뉴턴쯤 될 게다. 그만큼 보이밴드의 정점과 완성을 보여주었다. 보이밴드는 음악적으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보편성을 지향한다. 그중에서도 BSB는 끝판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요보다 인기 있었던 팝송을 꼽는다면, 머라이어 캐리, 보이즈 투 멘, 셀린 디옹과 함께 반드시 들어갈 팀이다. 이 팀의 음악 스타일을 흔히 슈가팝이라고 한다. 주로 소녀들에게 어필하는 달콤한 멜로디와 사운드라는 의미다. 레전드 프로듀서 맥스 마틴이 이런 작법에는 도가 텄었고, BSB의 친근한 캐릭터와도 잘 맞았다.


이 곡은 그런 슈가팝의 교과서와도 같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노래 10곡 안에 들어갈 것이다. 20년 넘게 들어도 희한하게 안 질린다. 미디엄템포의 리듬과 달달한 피아노 연주가 이끌어가는 기본 패턴에, 전 세계 소녀들을 홀렸던 이들의 하모니가 덧입혀지면, 아무리 독하게 먹은 마음도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다. 멜로디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이를 먹으면서 보이밴드 음악은 잘 안 듣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인생곡 중 하나로 꼽아야 할 것 같다.

    

NSYNC, <This I Promise You>

     

앞서 소개한 BSB와 라이벌리를 이뤘던 팀. 둘의 첨예한 경쟁 구도는 머라이어 캐리 vs 휘트니 휴스턴, 블러 vs 오아시스, 너바나 vs 펄잼을 찜쪄먹었던 것 같다. 근데 스타일에 있어서는 BSB와 사뭇 달랐다. 슈가팝으로 세계를 평정한 BSB와 달리, 이 팀의 킬러 콘텐츠는 강한 비트와 박력 있는 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BSB보다 절대 우위였던 점이 있다. 바로 슈퍼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존재. BSB는 솔로 데뷔해서 그 정도 성공한 멤버가 없다. 나는 사실 한창 보이밴드 듣던 시절에도 이 팀은 별로 안 좋아했었다. 이 팀 고유의, 전자음이 두드러지는 강한 비트의 곡이 어쩐지 좀 촌스럽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이 곡만큼은 즐겨들었다. 엔싱크답지 않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성숙한 보컬이 돋보이는 곡이다. 처음에는 모르고 들었다가, 나중에 엔싱크가 불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보이밴드 역대급으로 봐도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가 아닐까 싶다. 작곡자는 그 유명한 리처드 막스다. 어쩐지 그 양반 불멸의 히트곡 <Right Here Waiting>과도 스타일이 비슷한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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