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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Dec 18. 2023

재즈인 듯 재즈 아닌 재즈 같은 곡들

재즈에 취미를 붙여보려 하지만, 잘 안 된다. 내게 재즈는 클래식과 함께 음악 감상 취미의 최고봉에 있다. 이건 무라카미 하루키 탓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에서 재즈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는 글쓰기의 많은 것을 음악, 특히 재즈에서 배웠다고 한다. 재즈에 대한 책도 여러 권 냈다. 그의 문장을 좋아하는 나도 의문이 생긴다. 대체 재즈라는 음악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러지? 그래서 하루키가 극찬한 뮤지션들 – 스탄 게츠, 델로니어스 몽크, 엘빈 존스, 찰리 파커 등 – 을 쭉 들어봤다. 하지만 솔직히 좋은 걸 모르겠다. 이유를 생각해봤다. 재즈의 핵심이라는 그 변칙성 때문인 것 같다. 아무래도 내 귀는 가요나 팝의 기승전결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정형화된 수용 범위를 갑자기 박차고 나가서 당혹스러운 연주를 펼치는 재즈곡에 적응하기 어렵다.

     

뭐 어차피 취향에는 정답이 없다고 넘겨도 된다. 재즈 안 듣는다고 누가 해코지할 것도 아니고. 하지만 대중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엘리트주의자인 나는, 어떻게든 재즈라는 고차원의 장르를 즐겨 보고 싶다. 공부하고 연구해서라도 말이다. 허나 아직은 내공이 부족하다. 장기 프로젝트로 도전해야 할 과제다.

     

다만 재즈 느낌이 가미된 팝은 즐겨 듣는다. 지금부터 소개해보려 한다. 이 곡들을 재즈라고 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는 다 팝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곡과 사운드 전개에 있어서, 재즈 느낌을 내려 한 곡이라고는 할 수 있다. 따라서 재즈의 그루브를 적당히 즐기되, 멜로디나 반주는 거부감 없는 수준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나처럼 재즈를 듣고 싶지만, 어려워서 적당히 타협하려는 사람들에게 강추한다.



     

George Michael, <Kissing a Fool>

    

조지 마이클은 가장 섹시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 가수다. 그 목소리가 재즈풍으로 편곡된 이 발라드에 겹쳐지니, 이보다 환상적일 수 없다. 그를 한때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로 떡상하게 한 초명반, <Faith>의 마지막 트랙이기도 하다. 이 곡은 메가 히트곡이 빵빵 터진 이 앨범에서 그리 돋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소품이었던 이 곡이 그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제로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한다.


Sting, <Englishman in New York>

     

전주 2초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곡. 팝 역사를 통틀어 이 곡과 비슷한 곡조차 없을 게다. 그만큼 유니크하다. 이걸 부르는 스팅의 목소리도 꽤 섹시하다. 위의 조지 마이클이 퇴폐적인 섹시함이라면, 이 곡의 스팅은 지적인 섹시함이다(기준은 그냥, 내 마음대로…). 라이브 클립으로 보면 더 쩐다. 흔들흔들 리듬을 타면서 영국인의 부심을 허스키하게 내뿜는 스팅 아재의 아우라는 정말 간지 그 자체다.     


Frank Sinatra, <The Way You Look Tonight>

     

재즈팝을 논하는 데 이 레전드가 빠질 수 없다. <My Way>는 너무 유명하니 대신 이걸 들어보자. 이 곡은 1936년 발표된 고전 중의 고전으로, 수많은 뮤지션이 불렀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버전은 역시 프랭크 시나트라의 커버. 도입부의 쿵짝쿵짝 흘러나오는 흥겨운 리듬에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시나트라의 소울풀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아마 이걸 듣고 있는 여기가 바로 뉴욕이로구나 싶을 것이다.     


Maroon 5, <Sunday Morning>

     

코모도스의 <Easy>와 함께 일요일 아침 마성의 BGM. 팝록 밴드 마룬 5는 의외로 이런 재즈 스타일 곡도 잘한다. 사실 곡의 리듬과 사운드 전개가 유니크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디선가 들어본, 평범한 느낌이다. 그러나 애덤 리바인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그 단점을 상쇄한다. 정말 이 곡은 이 양반 말고는 아무도 부르면 안 된다. 이 곡을 더 잘 듣는 팁 하나 드린다. 햇살 좋은 일요일 아침, 노천카페로 간다. 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날씨여야 한다. 그리고 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앉는다. 커피를 시키고 책을 펼친다. 커피가 나오면 이어폰을 끼고 이 곡을 재생한다. 커피, 바람, 문장, 풍경을 번갈아 느끼며 이 곡을 듣는다. 그럼 훨씬 더 좋다.     


Harry Connick Jr., <A Wink and a Smile>

    

노래는 제쳐두고 일단 가수의 근황이 궁금하다. 정말 어디서 뭐하는지 모르겠다. 해리 코닉 주니어 존잘에 피아노 잘 치고 목소리도 달달해서 인기 많았었는데. 재즈팝에 최적화된 이 가수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곡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듣기 편한 재즈팝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OST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역시 셀린 디온의 <When I Fall in Love>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곡도 만만찮은 명곡이다. 특히 곡 중간에 튀어나오는 튜바 솔로가 포인트다. 익살스러우면서도 정감이 간다.     


Michael Buble, <Make You Feel My Love>

    

여러 번 리메이크된 곡이다. 밥 딜런의 원곡과 아델의 리메이크곡 모두, 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다. 두 곡은 피아노가 주가 되는 미니멀한 구성을 취한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느낌이 휑하고 덤덤하다. 그런데 마이클 부블레의 리메이크 버전은 영 딴판이다. 재즈풍의 밴드 편곡으로 바꿔서 아주 그냥 흥겹다. 특히 중간중간 삽입되는 스트링 사운드는 상쾌하기까지 하다. 나는 이 마이클 부블레 버전이 이 곡과 더 어울린다 생각한다. 제목부터 내 사랑을 너에게 느끼게 해주겠다지 않나. 마이클 부블레의 재기발랄한 보컬을 들으면, 싫어도 저절로 느끼게 될 것이다.     


Ohashi Trio, <My Shooting Star>

     

뭔가 아쉬워서 제이팝 곡도 하나 넣어봤다(…). 하루키는 “일본인이 재즈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지만, 사실 일본의 재즈는 세계적 수준이다. 팬층도 탄탄하고 뛰어난 뮤지션도 즐비하다. 일본은 특히 재즈를 팝적으로 재해석한 퓨전재즈에서 강세를 보인다. 이 분야 양대산맥인 카시오페아와 티스퀘어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이 있으며, 가요에도 큰 영향(표절 포함;;)을 미쳤다. 이 곡을 부른 오하시 트리오도 이와 비슷한 노선에 있다. 리더 오하시 요시노리는 재즈 피아노를 전공한 진퉁 재즈 뮤지션이다. 팀 이름은 트리오지만 원맨밴드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 등을 이 양반 혼자 다 연주한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포괄하는 장르의 스펙트럼이 꽤 넓다. 특히 이 곡은 세련된 사운드와 편안한 멜로디가 돋보인다. 나른한 오후의 BGM으로 쓰기에도 좋다. 이 곡을 틀면, 노곤해지던 실내 공기가 다시 몽글몽글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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