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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Dec 21. 2023

제목 짓기

짧은 글일수록 쓰기가 더 어렵다. 옛날부터 그랬다. 긴 글은 곧잘 썼지만, 짧고 임팩트를 주어야 하는 글은 잘 못 썼다. 한 단락이면 충분할 글을 서너 단락에 걸쳐서 쓰기가 예사였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다. 예전에 쓴 글들을 지금 보면 아주 가관이다. 서사는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논지는 유사하게 반복되며, 문장은 멈출 곳을 잃고 우왕좌왕한다. 당장 브런치 초창기에 쓴 글에도 이런 경향이 보인다.

     

대학원 시절 어떤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아마도 논문 초고 발표회였던 것 같다. 아무리 두꺼운 논문을 썼더라도, 핵심을 단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걸 못 하면 그 논문은 제대로 쓴 게 아닐 가능성이 높단다. 별로 좋아하는 교수님은 아니었지만 강렬하게 다가온 지적이었다. 하긴 아인슈타인도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했었다. 간단히 설명할 수 없으면, 그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책의 제목을 정하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 1차 편집된 본문을 받아보니 무려 350페이지가 넘어간다. 새삼 이렇게 많이 썼었나 싶다. 물론 많은 분량이 꼭 충실한 내용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조사하고 고민한 결과가 일단 분량으로 드러나는 듯하여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그 두꺼운 분량이 제목을 짓는 데는 외려 부담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짧고 임팩트 있게 압축하나 싶어서. 작업 초창기부터 얼마 전까지, 내가 생각한 제목이 여러 개 있긴 했다. 출판사에 죄다 까여서 그렇지.

     

결국 제목은 이 분야의 전문가인 출판사가 정했다. 정확하게는 출판사에서 몇 가지 제목(안)을 주었고, 최종적으로 내가 고르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골랐다고 하기도 뭐하다. 안은 여러 개였으나, 그중 출판사에서 1안으로 민 것을 그대로 따라갔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래서, 대망의 내 인생 첫 책 제목은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마뜩찮았다. ‘최소한의~’로 시작하는 베스트셀러가 이미 몇 권 있어서다. 영 오리지낼리티가 없는 제목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과학 분야에는 이 네이밍이 없고, 그러니 우리가 선점(?)해야 한다는 에디터 선생님의 설득에 넘어갔다. 어차피 책 제목도 트렌드가 있어서 다 돌고 도는 거라며.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했다(역시 나는 귀가 얇다).

     

책은 다음 달 9일쯤 시중에 깔릴 예정이다. 편집된 본문과 책 제목을 보니, 내가 책을 낸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과연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한다. 하지만 책은 이제 내 손을 떠났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이럴 때 떠올리는 말이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머지는 그저, 하늘의 뜻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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