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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an 02. 2024

글을 쓰는 이유

나는 브런치 작가 중에서도 비효율적인 편이다. 주로 길고 품이 많이 들어가는 글을 쓰는데,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건 구독자 수, 조회 수, 라이킷 수, 댓글 수, 어떤 지표로 봐도 명확하다. 그나마 의리로 읽어주시는 동료 작가님들을 빼면, 아마 그 숫자는 더욱 초라할 것이다. 브런치가 독자보다는 작가가 더 많은 플랫폼임을 감안해도 그렇다. 브런치 시작한 지 이제 3년 남짓인데,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내 글은 평범한 독자가 오다가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 쓰면서도 늘 “이런 걸 과연 읽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기가 아닌 이상, 독자가 없을 게 뻔한 글을 쓰고 싶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하긴 요즘 SNS를 보면, 일기도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게 트렌드 같다). 더구나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굳이 시간과 공력을 들여서 그 어려운 일을 하는 이유는, 아마 글에 대한 공감을 얻고 싶어서일 게다.

     

본래 브런치는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회사의 고스트 라이터 일에 현타가 와서, 내 이름으로 뭐라도 써보고 싶어서 작가 신청을 했다. 당연히 작가명도 실명으로 골랐다. 그리고 정말 쓰고 싶은 주제의 글들을 생각날 때마다 썼다. 그때 쓴 날 것(?)의 글들을 지금 보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다. 라이킷도 미미하고 댓글은 없다시피 하다. 아마 이런 주제로 쓴 사람은 브런치에서 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도 좋은 평가를 해주는 분들이 아주 가끔 있기는 했다. 그런 반응을 확인하니 나도 조금씩 독자를 고려하게 되었다. 내 글을 누군가 좋게 봐준다는 사실이 그만큼 신하면서도 뿌듯했다.

     

결정적으로 책을 쓰면서 독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독자가 흥미로워 할 이야기를 우선 생각했다. 거기에 맞게 소재, 서사, 문체를 조정했다. 교양서보다는 에세이를 쓴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물론 출판사에 의해 반강제로 한 일이었다. 작업 초창기만 해도 이게 안 돼서 여러 번 까였다. 그러면서 내가 그간 독자라는 대상에 얼마나 무신경했는지 깨달았다. 책 한 권을 써보니, 무엇보다 큰 수확은 독자에 대한 감이 좀 생겼다는 점이다. 이 책은 아마 내가 평생 써온 것 중 가장 친절한 글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작용의 생각도 든다. 그것은 글을 쓰는 근본적인 목적과도 연관된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글로써 내 사유와 개성을 표현하고 싶다. 그리하여 누구보다 나를 우선 만족시키고 싶다. 독자는 그 다음이다. 물론 사람들이 내 글을 많이 읽어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독자는 글의 목적이 아니라 보상이다. 즉 내가 좋은 글을 쓰면 자연히 따라오는 존재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기준은 깨달음이다. 나는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 글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올해에도 나는 꽤 많은 글을 쓸 것이다. 일단 연말까지 『연구소의 탄생(가제)』이라는 책을 한 권 더 써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세계의 뛰어난 연구소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교차하면서 보이고자 한다. 또 며칠 뒤 나올 『최소한의 과학 공부』에서 미진했던 부분도 보완하려 한다. 이 책에서는 과학자들이 가진 지식인의 면모를 잘 다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 작업을 나머지 공부처럼, 또는 책을 다 읽은 독자를 위한 A/S처럼 해보려 한다. 이 두 가지가 올해 반드시 써야 할 것들이다. 이 외에도 마음 내키는 주제들을 더 쓰고 싶다. 특히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이론적으로 하드코어한 글이다. 아마 (초창기 브런치 글처럼) 읽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써보고 싶은 이유는, 나 이런 것도 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공부를 위해서다. 아무래도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손으로 써보면 훨씬 정리가 잘 된다. 이미 아득해지고 있는 전공 지식을 더 까먹기 전에, 이런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논어에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는 말이 있다. 학문은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의미일 테다. 글쓰기도 위기지학과 다르지 않다. 나는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 쓴다. 앞으로 브런치를 얼마나 할지 모르겠지만, 그만두는 날까지 이 기조를 지킬 것이다. 구독자, 라이킷, 댓글이 적어도 괜찮다. 브런치는 내게 ‘작가’라는 과분한 칭호를 붙여주었다. 살면서 가져본 칭호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작가 이상의 더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작가를 넘어 장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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