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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Mar 11. 2024

번역을 하는 이유

* 이 글은 @세온 작가님의 2024년 3월 10일 글 <읽으면 좋지만 읽지는 못할 듯한 고전>에서 영감을 얻어 썼습니다.

     

대학원 2년은 좌절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사회과학을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겠다는 다짐으로 사회학과 대학원에 왔지만, 배우는 내용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중 가장 힘든 일은 영어 원서를 읽는 것이었다. 막스 베버, 카를 마르크스, 위르겐 하버마스, 탈콧 파슨스 같은 대가들의 이론은 난해해서 뭔 소리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것을 외국어로 읽으려니 머리가 팽팽 돌 지경이었다. 물론 시중에 국역본도 일부 나와 있기는 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번역된 문장을 읽으면 개념과 논리가 더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여기서 다시 한번 떠오르는 『정신현상학』의 악몽… ㅜㅜ). 번역 퀄리티가 그만큼 떨어진 탓이다. 그래서 “어설픈 번역본보다는 차라리 원서로 읽는 게 낫다”라는 지론을 설파한 선배도 있었다.

     

언젠가 그 선배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내가 다닌 대학원 사회학과는 예로부터 좌파의 온상이었다. 지금은 다 망해버렸지만, 1980~90년대만 해도 온갖 변혁 이론을 생산해냈다. 필화 사건으로 감방에 간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특히 중요했던 임무는 외국의 좌파 이론을 직수입하는 것이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망하자, 마르크스주의의 대안으로 유로코뮤니즘이 유행했다. 루이 알튀세르와 에티엔 발리바르가 대표적인 이론가들이었다. 선배들은 죽어가는 마르크스주의에 호흡기를 대는 심정으로 이 학자들을 공부하고 번역했다. 이때의 일이 궁금했던 나는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는 영어권도 아니고 프랑스 학자들인데 대체 어떻게 공부한 거냐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어를 배워서 공부했다고 한다. 유럽의 웬만한 좌파 이론서는 일본에서 번역이 다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어나 프랑스어 원전보다, 일본어를 몇 주 바짝 배워서 번역본을 읽는 게 훨씬 쉬웠단다.

     

실제로 일본은 번역 왕국으로 유명하다. 정말 별의별 외국책이 다 번역되어 있다. 일본의 서점에 가보면 그 덕후스러움에 압도된다. 여기에는 역사적 전통이 있다.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가 쓴 『번역과 일본의 근대』라는 책에 잘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번역이 외국 문물의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자국의 전통에 의한 창조와 변용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일본의 영어 공용화 논쟁이다. 메이지 시대에 모리 아리노리라는 유학파 외교관이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일본어로는 서양 문물 수용에 한계가 있으니, 영어를 국어로 삼자!” 당시 일본은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으니 있을 만한 주장이었다. 그런데 역시 유학파였던 바바 다쓰이라는 민권운동가가 반론을 폈다. “영어를 국어로 하면 대다수 하층계급은 국사(國事)에서 배제당할 것이다!” 격렬한 논쟁 끝에 바바의 주장이 지지받았고, 일본은 영어 공용화 대신 번역주의를 택했다. 외국책은 뭐든지 번역되어 나오는 번역 왕국 일본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런 번역주의의 위엄을 보여주는 책이 있다.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이다. 단테의 『신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신곡(神曲)』이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가져온 제목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일본의 『신곡』 번역은 무려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까지 20종 가까이 번역되었고, 관련 해설서는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그중 『단테 신곡 강의』는 도쿄대 철학 교수인 이마미치의 강연록이다. 나는 이 책을 서문과 후기만 읽었다. 간략히 소개해본다.



     

1922년생인 저자 이마미치는 10대에 처음 일본어판 『신곡』을 접했다. 그는 그 장대한 구성과 아름다운 문장에 매료되어 이 책을 제대로 읽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번역본을 비교해 가면서 읽었고, 이탈리아어와 라틴어까지 공부했다. 하지만 지도교수는 철학 전공이었던 이마미치에게 우선 아리스토텔레스에 전념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교수님 충고대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서양 철학의 기초를 공부하면서도, 토요일 밤마다 세 시간씩 『신곡』을 읽었다. 원전은 물론 여러 주석서도 함께 읽으면서 공부했다. 그 토요일의 자습은 무려 50년 넘게 지속되었다.

      

노교수의 오랜 『신곡』 공부는 앤젤 재단이란 곳에도 알려졌다. 모리나가 제과라는 과자 회사가 설립한 이 재단은 기초연구와 학술활동을 지원해 왔다. 1997년 앤젤 재단은 이마미치에게 강의를 부탁했고, 그는 기쁜 마음으로 15회에 걸쳐 『신곡』을 강의했다. 매 강의는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단테와 관련이 있는 이탈리아 포도주를 마시며 마무리되었다. 청중에는 학자나 젊은 학생은 물론 쇼와덴코 주식회사의 고문 같은 저명인사도 있었다. 강의 녹화와 아카이빙은 후지제록스 종합연구소가 맡았는데, 사장이 직접 챙긴 일이라고 한다.



      

짧은 내용이지만 부러움을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학술 연구, 특히 인문학의 환경이 척박한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그렇다. 나는 종종 일뽕(?)이라고 까일 정도로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다치 미츠루에게 감동 받고, 미스터 칠드런과 마키하라 노리유키의 팬이며, 카레와 스시를 즐겨 먹는다. 회사 업무인 과학 정책에서도 일본을 많이 참고한다. 근대과학의 후발 주자로서 빠르게 선진국에 진입한 일본의 정책을 살펴보면, 탁월한 혜안과 진지한 노력에 놀라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 낸 책에도 일본의 과학을 배우자는 취지의 내용을 일부 넣었다. 출판사에서는 난감해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일본의 힘을 가장 느끼는 분야는 역시 번역의 전통이다. 단순히 내가 외국어 원서 읽기를 불편해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번역은 외국 문헌을 우리말로 옮기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문헌의 저변에 흐르는 사상과 철학을 우리 것으로 소화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단어 하나를 바꾸더라도 거기에 담긴 방대한 사상과 오묘한 의미를 이리저리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번역어가 바로 과학(科學)이다. 19세기 니시 아마네는 일본에 없었던 science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 원초적 의미를 탐구했다. 그 결과가 바로 '분야별로 체계화된 전문 지식'이라는 뜻의 과학이었다. 세상의 원리를 단일한 이치로 설명하는 동양의 철학과는 학술적으로 대비된다. 니시는 과학뿐 아니라 기술, 예술, 이성이라는 말도 만들어냈다. 그의 동료인 후쿠자와 유키치도 민주, 권리, 사회 등 근대정신의 기초를 이루는 단어들을 번역했다. 일본의 근대는 바로 이러한 번역어들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결국 번역의 전통이 축적되면 그만큼 사회의 지식수준도 성숙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선진 문물의 근원과 우리의 사상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본이 동양에서 가장 빨리 선진국이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도 이런 전통을 배울 수는 없는 걸까. 하긴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는 이런 주장도 일뽕이라고 욕먹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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