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부쿠로(2005), <사쿠라(桜)>
새벽길을 나서는 건 오랜만이다. 어스름하게 터오는 먼동에 어쩐지 마음도 따뜻해진다. 사실 KTX를 타면 그리 오래 걸릴 여정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든 초행길은 여유를 많이 두어야 하는 법이다. 또 오늘 일정은 절대로 늦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고.
봄의 초입에 찾아가는 낯선 소도시의 도서관이라. 이 짧은 문장에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셋이나 들어 있다. 봄, 소도시, 도서관. 뭔가 운치를 자아내는 어휘 조합이다. 하지만 온전히 그 기분에 취할 수만은 없다. 오늘 나는 작가로서 첫 강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긴 시간 여러 사람의 관심을 유지하면서 메시지를 체계적으로 전달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달성‘군립’도서관이라기에 한적한 농촌을 상상했다. 그런데 지하철역에 내려보니, 복잡하고 세련된 신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길가의 스타벅스 매장이 광역시인 우리 동네보다도 크다. 머릿속으로 오늘 이야기할 내용을 끊임없이 점검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몇 차례 리뷰를 반복하니 어느새 눈앞에 도서관이 보인다.
평일 오전인데도 수강생이 30명을 넘길 줄은 몰랐다. 젊은 직장인에서 연세 지긋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분들이 오셨다. 인사말에서 오늘이 작가로서 하는 첫 강연이라고 하니,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신다. 우려와 달리 2시간 동안 해야 할 말을 빠뜨리지 않고 잘 마쳤다.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신 덕분이다. 이 좋은 봄날에 벚꽃놀이 대신 도서관 과학 강의에 모인 어른들이라니. 격조와 낭만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분들에게 보잘것없는 지식이나마 전해드려서 기쁘다.
돌아오는 길에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음악을 켠다. 문득 듣고 싶은 곡이 떠오른다. 코부쿠로의 <사쿠라(桜)>. 그저 만개한 벚꽃을 즐기고 싶어서 고른 곡은 아니다. 이 곡의 노랫말에는 벚꽃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슬픔과 강인함이 배어 있다. 예전부터 제목과 가사의 그 모순적인 의미화가 좋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봄이라는 계절에 어울리는 정서라는 생각을 해본다.
桜の花びら散るたびに
벚꽃 잎이 떨어질 때마다
届かぬ思いがまた一つ
닿을 수 없는 마음이 또 하나
涙と笑顔に消されてく
눈물과 웃음에 지워져 가고
そしてまた大人になった
그리고 다시 어른이 되었어
追いかけるだけの悲しみは
뒤쫓아갈 뿐인 슬픔은
強く清らかな悲しみは
강하고 맑은 슬픔은
いつまでも変わることの無い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아
無くさないで 君の中に 咲く Love
잃지 말아줘 네 안에 피는 Love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어린이집으로 가서 딸아이를 찾는다. 이 녀석은 오늘 아빠 엄마의 일정 때문에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등원해야 했다. 미안한 마음에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아준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에 선 시장을 함께 구경하고 건너편 카페에 간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딸은 토마토주스를 마신다.
“서우야, 오늘 아빠 멀리 가서 수업하고 왔어.”
“수업? 아빠가 선생님이야?”
“응. 아빠가 쓴 책으로 수업했지.”
“근데, 나도 책 썼어.”
“엥? 서우가 책을 썼다고? 무슨 책?”
“응. 최소한의 과학 공부.”
“ㅋㅋㅋㅋ아놔ㅋㅋㅋ 그래 잘했다.”
먹성 좋은 이 녀석은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신 초콜릿과 젤리도 꼼꼼히 챙긴다. 이제 곧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라 함께 카페를 나선다. 딸과 함께 신호를 기다리는 횡단보도 저 멀리 석양이 내린다. 길었던 봄날의 하루가 이렇게 저문다.